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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lie Jan 28. 2024

[하루] 축구선수가 되겠습니다

2022.8

  둘째는 으레 남자아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듯 축구, 야구, 농구 등 온갖 스포츠를 사랑한다. 그중 제일은 축구라, 자연스럽게 꿈도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놀이터며,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공을 차더니,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신대FC라는 팀을 만들어서 점심시간과 하교시간에 모여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아이들 공놀이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심판도 정해놓고 하는 걸 보니 꽤나 진지한 아이들만의 리그 같았다.


  일곱 살 때부터 축구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너무 어린것 같아서 1년을 미루고 여덟 살이 되던 해 여름, 처음으로 축구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체계적인 기본기 없이 무작정 뛰어다니다 보니 다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해서 제대로 기본이라도 배워두자는 생각이었다. 축구장에 간 첫날 비록 인조잔디이지만, 푸른 잔디 위에서 해보다 더 밝은 미소로 뛰던 둘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실력이 어떠하든, 강습비가 얼마이든 그날의 표정으로 모든 것이 다 상관없어져 버렸다.


  둘째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사랑하고, 축구에 진심인 남편은 몇 달 전부터 근처의 축구학원을 검색해 보며 시설과 교육 시스템, 무엇보다 코치진의 경력을 우선으로 몇 군데를 추려냈었다. 그중 두 군데를 둘째와 다녀오더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생긴 축구학원에 등록까지 마치고 왔었다. 수업은 주 2회, 1시간씩 진행됐다. 그런데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둘째의 입에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1년의 기다림과 그간 아빠의 노력이 무색, 아니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유니폼이며, 축구화며, 보호대까지 새로 마련한 장비에 흙먼지도 미처 묻지 않았을 때였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둘째와 단둘이 방 안에 마주 앉아 연유를 물었다. 둘째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감독님이 너무 무서워. 매일 혼나."


  둘째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고 울상이 되어있었지만, 대충 사연이 짐작이 되었기에 그저 엉엉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운 좋게도 시작하고 며칠 되지 않아, 취미반에서 새로 개설된 대표반으로 옮겨 수업을 받게 되었다. 대표반은 체계적인 훈련과 스킬을 배우면서 유소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를 육성하는 반이었다. 물론 재밌는 축구경기보다 훈련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고, 감독님의 태도 역시 진지할 수밖에 없었을 터.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하며 독일 유스팀에 있었던 젊은 감독님은 열정이 넘쳤고, 늘 목이 쉬어있을 만큼 아이들 지도에 거침이 없었다.


  아마 둘째를 혼낸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넓은 축구장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지휘를 하기 위해 짧고 명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했을 것이고,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했을 것이다. 축구학원에 처음 간 날 그런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둘째가 걱정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예민한 데다가, 유치원과 학교에서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여자 선생님들에게서 칭찬만 받았던 둘째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감독님께 이야기를 꺼냈다. 감독님은 약간 당황해하며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혼나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둘째는 운동신경도 좋고, 훈련도 잘 따라오는 편이라 한 번도 혼낸 적이 없다고. 역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혼을 내도 둘째는 감독님의 목소리와 표정에 겁을 먼저 집어 먹었을 것이었다. 또 혼을 내지 않더라도 축구장에서 큰소리를 치는 감독님이 무섭게 느껴졌을 게 분명했다. 감독님께 조심스레 둘째의 성향에 대해 얘기하며 혼이 날 일이 있으면 당연히 혼이 나도 되고, 둘째에게만 다른 말투나 태도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이가 속상해한다면 집에서 달래주면 되고, 힘들어한다면 쉬거나 그만 두면 되는 일이라고. 언젠가는 둘째가 넘어야 할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아이라고 해서 주변의 모든 자극을 가지치기하듯 잘라주거나, 힘든 환경에 빠져있다고 해서 쏙 빼내와 익숙하고 편안한 온실 속에 넣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참아내야 할 것이 있고, 힘들더라도 해내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둘째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1년을 기다렸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겠다고 하는 둘째를 보니 나 스스로 덜컥 겁이 났던 것 같다. 앞으로 둘째가 자신의 예민한 성향을 방패 삼아 힘든 상황에서 쉽게 포기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만은 둘째의 편에서 맞춰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마도 첫날 축구장에서 뛰던 둘째의 햇살 같던 표정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단지, 그런 이유로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과 얘기를 한 다음날, 둘째에게 차분히 설명을 해줬다. 감독님은 너를 혼내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너를 싫어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모든 아이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뿐이다. 축구경기에서 상냥하고 예쁜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지휘를 한다면 그 누구도 감독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던 둘째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 작고 말랑한 아이의 몸과 마음속에서 지금 얼마나 크고 힘든 시련과 고민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는 것일까. 덩달아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곧 둘째는 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언가 엄청난 결정을 했다는 듯, 그럼 대표반이 아닌 취미반으로 옮겨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만둔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얘기해 준 것만으로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했던 대표반 수업에 다녀온 둘째가 복잡한 표정이 되어 돌아왔다. 다음 달에 유소년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취미반에 가게 되면 대회에 참가할 수 없기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둘째는 또 한 번의 고심 끝에 첫 대회만 참가해 보겠다고 했다. 대회라는 새로운 도전이 둘째를 자극한 것 같았다. 대회의 결과가 어떠하든 긍정적이고 좋은 자극임은 분명해 보였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훈련의 강도도 세지고, 그에 따라 감독님의 언성도 높아졌겠지만 둘째는 다행히 잘 견뎌내고 있었다.


  꼭 축구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견디고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면, 부모로서 그것보다 뿌듯하고 고마운 게 있을까. 부모는 결과를 마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기에 그 과정에서 아이가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아이도 언젠가 그 마음을 알게 될 순간이 오게 될까? 그날까지 난 아이의 과정을 함께 걸어주며 온마음으로 응원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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