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1
서툴고 미숙하지만 늘 끓고 있었고, 밝고 푸르렀지만 왠지 서글퍼서 비틀거리기만 했던 스무 살.
인생의 뚜렷한 목표도 반짝이는 꿈도 없던 시절, 무턱대고 혼자만의 오기로 계획했던 게 하나 있었다. 20대 때 전국을 다니며 세상을 배우고, 30대 때 조용한 바닷가 집에서 살겠노라고. 그리하여 마흔이 되기 전까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 것의 글을 꼭 쓰겠노라고.
하지만 20대 여자가 전국을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결국 한 지역에 정착해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첫 번째 계획부터 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결혼하면서 바닷가 집이 아닌, 지방 도시의 아파트에서 조용하지도 너무 시끄럽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허풍과도 같은 계획은 서서히 잊히고 말았다.
그렇게 아이 둘을 키우며 마흔의 해가 지났다. 처음부터 근본도 없이 수립되어 잊고 살던 계획을 이십 년 만에 떠오르게 된 건 작년 말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미국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의 쉼표를 찍으며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결국 20대, 30대, 40대의 계획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구나 하고. 그 계획을 내 생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온 건 아니었지만, 희미하게 이어져있던 작은 끈이 끊어진 듯 왠지 마음이 조금 무너졌었다. 그즈음이었다. 내년 6월부터 모든 국민의 나이가 한 살씩 줄어들게 될 거라는 뉴스 기사를 보게 된 것이. 내가 다시, 마흔이 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만 같았다. 자, 그러니 다시 한번 해보라고.
그 마지막 계획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기회가 다시 생긴 것만으로도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나날이 흘러갔다. 그렇게 약속했던 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이 기분만 좋은 채 끝나고 있었다. 전체 쓸 수 있는 기간은 1년이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6개월 뒤 조기 복직하기로 회사에 먼저 양해를 구하고 휴직한 상태였다. 막상 복직하려니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회를 날려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애초에 기회 따윈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는 자기 위안과 그럼 그렇지,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자기 비난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했다. 복직 날짜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쓰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용암처럼 뜨겁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한 번 주어지면 기회, 두 번 주어지면 운명, 세 번 주어진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선심 쓰듯 나를 위해 벌인 자선사업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6개월 만의 복직을 2주 정도 앞둔 어느 날,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현재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1년을 다 채우고 12월에 복직하라는 제안 내지는 암묵적 지시사항이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마치, 이제 그냥 좀 뭐든 해보라는 주문 내지는 강압적 명령과도 같은. 과연 무슨 기가 막힌 패를 숨기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건지, 어서 빨리 까 보여달라는 강요 내지는 위협적 협박. 어찌 되었든 기회는 기회인 셈이었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10여 년이 가까운 수천의 시간 동안 깊숙한 내면의 나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무언가 쏟아내지 않으면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아 영글지도 못하고, 다듬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 마구 붓고 토해내기만 했던 그때의 간절함을. 그렇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간절함과 처절함을 무시하고 외면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내면의 나보다 중요한 눈앞의 현실을 살아내야 했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스무 살엔 마흔이 되면 삶이 편해져 있을 줄 알았다. 세상의 역경과 고난 따위는 온화한 미소로 날려버릴 만큼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온전히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나이가 마흔인 줄 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삶이 불편하고, 작은 걱정에도 휘청거리며 잠 못 이루고,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살고 있는 여느 평범하고 부족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내게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마흔이란 숫자에 연연했던 건, 내가 정한 섣부른 한계를 조금이라도 유예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내 삶이 흐르고 있다 믿고 싶었는지도. 물론 올해가 지난다고 해도 내 삶의 모든 계획이, 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 테다. 문득, 스무 살의 내가 마흔의 계획까지만 생각했던 건 그 이후엔 무엇이 되었든 알아서 시작하고 살아가라는 게 아니었을까. (꿈보다 해몽. 미처 그 이후까지 내다볼 선구안이 없었을 뿐일지도 모르고, 그다지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내게는 구색 갖춘 명분 또는 핑계가 필요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 결국, 중요한 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작을 해야 끝을 보든 다시 시작을 하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하자. 여전히 출발선 앞에서 망설이느라 뛰어 나가지 못한 못난 인생이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다시, 마흔에 무엇이 됐든 앞으로의 나를 위한 시작을 해보려 한다. 몇 발자국 떼지 못하고 넘어지면 어떻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져도 어떠랴. 무엇이라도 시작해 봤다면 나중에 그 어떤 후회는 할 수 있을지언정, 해볼 걸 그랬어하는 못난 아쉬움은 남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