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
둘째는 첫 대회 전패 이후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듯, 1년 넘게 대표반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대회에 참가해서, 목표로 했던 첫 골도 넣어보고, 결승 문턱에서 아쉽게 패배해 준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대회에서는 형들 팀에 끼어서 후보로 10분 뛰고 운 좋게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이뤄낸 게 아니라고 여기는지, 우승이라는 목표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올해 마지막 대회가 12월에 있었다. 1년 간의 훈련을 통해 차츰 개인의 실력이 오르고 있었고, 아이들과의 팀워크도 잘 맞아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바로 한 달 전에 참가한 다른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던 터라 아이들 스스로도 우승에 대한 갈망이 눈덩이처럼 커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일 년에 두 번 개최되는 우리 도시 시장배 대회라 아이들도, 부모들도 내심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꿈틀대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감독님도 자칭 최고의 전력이라는 1, 2학년팀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우후죽순 피어난 마음속의 불씨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는지, 대회날 아침부터 기분 좋은 설렘과 적당히 들떠있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대회장 분위기와 긴장감을 즐기면서 아이들은 서로 장난도 치고, 잔디밭에서 신나게 구르며 놀고 있었다. 1년여 같이 대회에 참가하다 보니 아이들도 무척 친해지고, 부모들과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어느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축구공처럼 둥글게 둥글게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이렇게 가까워지고 끈끈한 무언가가 생길 수 있었던 건, 가슴 아픈 패배와 노력했던 힘든 과정과 함께 이룬 결실들을 울고 웃으며 같이 겪어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고마웠던 건, 누가 실수하더라도 서로 탓하지 않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쉽게 준우승을 했던 이전 대회에서 동점으로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결승전이자, 첫 번째 승부차기였다. 그때 3번 키커로 나온 아이가 긴장감에 실축을 했고, 그 결과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게 되었었다. 그 아이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울음을 참아가면서 그 아이를 달래주었다. "괜찮아. 우승은 다음에 하면 돼." 그 모습을 보면서 우승보다 더 값진 걸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몰랐겠지만, 그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순수한 마음이 한층 자라나는 눈부신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축구만 하는 게 아니라 네모로 선 그어진 작은 세상 안에서, 서로 힘을 모아 같이 이뤄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저 공놀이가 아닌 시련과 역경, 눈물과 땀, 웃음과 희망이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되도록 같이 구르고 굴린 결과였으리라.
어쨌든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과정을 지켜본 부모의 입장에서는 매번 대회마다 성장하는 너희들이 대회의 진정한 우승자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우승이냐며 반박하는 걸 보니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기다리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부쩍 실력이 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오른쪽 윙어로 나선 둘째는 정말이지 날개가 달린 듯 날아다녔다. 준우승을 일궈낸 둘째의 노력과 마음이 기특해서 새로 사준 축구화가 둘째의 발에서 춤을 추듯 화려하게 빛나 보였다. 결국 멋진 골을 넣으며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껏 여러 번 대회에 다녔지만, 둘째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만 했었지 잘한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 경기를 보고는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아, 진짜 우승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첫 경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아이들의 벅찬 마음과 상기된 표정과 더불어 점점 자라나는 기대감에 풍선처럼 마음이 둥둥 떠올라있는 상태였다. 이제 곧 시작할 경기에 앞서 아이들이 몸도 풀고 준비도 해야 하는데 같이 있어야 할 감독과 코치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본부석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감독님은 부모들을 조심스레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서 신나게 공을 차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감독님은 죄송하다는 말로 무겁고 불안한 문제의 실체를 꺼내기 시작했다.
참가팀마다 10명의 선수를 등록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실수로 총 11명의 선수가 등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경기를 뛰는 선수는 5명이고 나머지 5명은 후보가 되어 교체선수가 되는 방식이었다. 첫 경기가 끝나고 상대팀이 후보로 앉아있는 우리 측 6명의 아이들을 봤고, 그걸 문제 삼아 대회 출전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지. 이대로 짐을 싸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감독님은 대회 출전 취소 대신 이번 경기를 몰수패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남은 경기를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다른 참가팀들과 대회 운영진이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본부석으로 갔던 감독님은 잠시 뒤, 더욱 어두운 표정이 되어 돌아왔다. 상대팀과 운영진이 앞선 경기의 몰수패를 받아들이고 출전을 계속하는 대신에 10명의 선수로 맞춰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고 했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럼, 지금 아이들 중 한 명이 빠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연, 누가 빠질 것인가.
경기만 계속 참가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 명이 빠져야 한다. 부모들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그 뒤로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는 얼굴이 대조되듯 눈에 들어왔다. 힘들 때마다 서로를 위로해 주던 저 아이들 중 과연 누구를. 어른들의 실수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야 한다는 말인데, 모두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게 내 아이는 아니기를.
감독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팀의 전력을 위해 2학년보다는 1학년이, 1학년 중에도 아직 대표반 훈련의 참가 횟수가 적었던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감독님은 그 아이의 아버지와 따로 몇 마디를 나누더니, 뛰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안아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말없이 겉옷을 입히고, 어색한 인사를 하며 경기장을 떠나갔다. 아이는 아빠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아쉬움과 이상한 상황에 자꾸만 뒤돌아보았고, 남아있는 어른들 중 돌아보는 아이의 눈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자신만 경기 도중에 가야 하는지, 그 아버지는 어떻게 이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을까. 과연 설명이 될 수 있기는 했을까. 남은 아이들이 다가와 왜 그 아이가 가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뒤늦은 경기가 시작됐다. 한차례 일을 치르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준비시간 없이 바로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님이 다급하게 몇몇 아이들의 부모를 찾았다. 이유인즉슨 이 대회가 풋살대회라 스터드가 나와있는 축구화는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둘째에게 새로 사준 게 축구화라 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인조잔디용 축구화로 풋살화 겸용이라 사준 것인데, 무엇이 또 잘못되었단 것인지. 그렇다면 첫 번째 경기 때는 왜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누굴 탓하거나 따질 수도 없었다.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규정에 맞지 않은 축구화를 신은 아이들 몇몇이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의 부모님이 집으로 달려가 안 신는 풋살화 몇 개를 챙겨서 왔고, 얼추 발에 맞는 걸 꿰어 신고 경기를 마저 뛸 수가 있었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날아다녔던 둘째는 신데렐라의 마법이라도 풀린 것처럼 빛을 잃은 채 제대로 뛰어다니질 못했다. 축구화는 발에 길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사이즈가 맞지도 않는 신발을 처음 신고 뛰려니 어색하고 불편했을 것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경기는 패배했고, 이어진 마지막 예선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한 아이가 빠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러한 패배를 예상했었는지도 몰랐다. 모두들 어색한 인사를 하고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집에 가는 길에 둘째가 물어왔다. 그 아이가 집에 가야 했던 이유에 대해. 자신의 축구화가 왜 두 번째 경기부터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만, 때로 살다 보면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그치지 않았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부끄러워지는 많은 순간 중 하나였다.
둘째가 빛을 잃고 뛰는 것을 지켜보는 내내 침묵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이의 이름이 불리기 전의 침묵과 그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난 후의 침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지만,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이상하게 둘째도 경기의 패배에 대해 큰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던 둘째가 어쩐지 슬퍼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먼저 떠나야 했던 아이에 대한 마음이 남아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자신은 졌더라도 남은 경기를 뛸 수 있었으니. 오히려 둘째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오늘따라 축구가 잘 되더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씁쓸한 기분과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생각했다. 둘째에게는 살면서 겪게 될 어쩔 수 없는 한 번의 하루가 지나갔고,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후회와 모순의 하루가 또 한 번 반복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