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1 pm 05:01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그때 다시 시작하자, 그때 다시 사랑하자, 그때 다시 살아가자.
눈이 녹으면 흰색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언젠가 읽었던 문장이 떠오르며 이마 위로 자막처럼 글자들이 또박또박 지나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그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서는, 어떤 결정을 해도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이나 치러야 하는 고통, 그리고 그 대가는 비슷한 양일 거야. 종류가 달라지는 거지. 선택을 한 뒤 후회하는 사람은 늘 후회해. 모든 선택이란 미련을 남기기 마련이고 후회란, 잘못 선택해서가 아니라, 감정 조절에 실패할 때 오는 거라고 했어. 그러니, 어느 게 더 나은가, 더 옳은 가하는 것보다 네 마음이 어느 걸 더 원하는가가 중요할 거야.”
- 전경린,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미련은 단어 그대로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다. 간 적 없고, 본 적 없고, 가진 적 없고,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는 인간의 습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간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해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을 아쉬워하기 마련이다. 아쉬움이 커지면 후회가 든다. 그래서 미련은 ‘남기는 것’이고, 후회는 ‘하는 것’이다. 미련은 얼마를 남기든 상관없지만, 잡지 못하고 비어있는 한쪽 손바닥만을 내려다보면 결국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모든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옳지 못한 것으로, 원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놓쳐버린 선택에 자신의 생을 떠내려 보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사라지는 것일까?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니어도 일방적인 한 사람의 사랑이라도 그 사랑이 끝나서 애꿎은 마음 좇기를 그만두면, 폭포수처럼 한 곳으로만 쏟아지던 사랑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걸까? 둘이 아닌 하나였기에 사라져 버리고 나면 그 근거조차 불분명한, 외사랑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외로운 한쪽의 날개로는 멀리도 갈 수 없을 것인데.
사랑이 가슴 아픈 여자 혜규. 사랑을 떠나서 멀리 돌아왔지만, 옛 기억에는 그녀도 엄마도 집도 혜도도 첫사랑 인채도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있다. 그녀가 손목을 긋고 떠난 7년 전의 어느 기점에서 멈춰진 채 조금씩 틀어져버린, 기억과 사랑과 마음이 그녀가 돌아온 후부터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마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시작하자, 그때 다시 사랑하자, 그때 다시 살아가자고 했던 것처럼 멈춰진 기억 속으로 돌아온 그녀의 생에서 인채가 죽고, 엄마가 아프고, 혜도는 사랑을 찾아가고, 예경이 찾아온다. 그녀는 삐거덕거리는 생의 굴레를 힘겹게 움직여본다. 그리고 안심한다. 예전처럼 가볍지도, 쉽지도, 생생하지도 않지만 멈췄던 그녀의 생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으므로.
두 사람의 사랑이, 한 사람의 외사랑이, 그 모든 사랑이, 끝이 나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버려진 기억처럼 한 곳에 고여 있다가 비틀대는 생에 치여 예기 치도 못한 어느 순간에 발이 빠져버리면, 다시 사랑에 젖어들도록 만든다.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미련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슬픔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원망이라고도 하는. 그리고 그때부터 고여 있던 사랑이 흐르고, 끊어졌던 기억이 살아나고, 멈춰있던 생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