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9
토요일 새벽 4시 20분에 출발해서 강원도 정동진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날은 점점 밝아오는데 하늘 가득 낀 구름 때문에 기다리던 일출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바다를 보았다. 새벽에 마주 선 동해는 광활했다. 남해처럼 섬이 막아주는 바람에 잔잔한 파도와 달리, 그대로 저 먼 곳으로부터 하염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던 바다는 힘찼다. 정말 그저 광활한 바다였다. 바다에 깊고 푸르른 바닷물과 그에 접해있는 높고 넓은 하늘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바다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동해의 바람은 매서웠고, 파도는 거침없었으며, 바닷물은 맑은 청록색이었다.
남해가 정적이라면, 동해는 동적이었다. 쉼 없이 바람이 불어왔으며 파도가 거세게 몰려왔다. 사람들이 동해를 찾는 이유는 아마도, 막힘없이 탁 트인 바다의 무한함과 거센 바람을 마음껏 맞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의 바람을 맞고, 파도에 눈이 시려오자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뜨였다. 바다. 동해는 살아서 마구 뛰는 청춘의 생이었다. 그렇다면 남해는 욕심을 모두 버린, 무욕과 여유의 삶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겐 남해가 어울렸지만 동해는 마치 잊었던 청춘의 편린처럼, 생생한 추억처럼 나를 반겼다. 동해가, 동쪽의 생동하는 바다가 좋아졌다.
정동진에서 해를 기다리다가 추위를 못 이겨 차에 올랐다. 정동진역까지 걸었다가 돌아왔는데,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왔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정동진역과 광장은 그때의 어렴풋한 기억에 비해 무척이나 작고 초라했다. 사람은 고의적이든 아니든,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과장하는 법이다. 그래서 어쨌거나 지난 추억은 매우 아름답거나 매우 슬프거나 매우 애틋하다.
강릉으로 가서 아침으로 따뜻한 올갱이 해장국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차에서 두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잤다. 새벽의 찬 기운을 맞은 몸에 온기가 스며들자 쉽게 잠이 들었다. 경포호 앞 주차장에서 잠을 잤는데 12시가 되어 중천에 뜬 해에 눈이 부셔서 잠을 깼다. 달콤한 낮잠이었다. 알람소리에 소스라치며 깨는 것과 달리 햇살에 스르르 영혼이 녹아드는 느낌의. 아침을 먹고 바로 잠든 탓에 조금은 부은 얼굴로 차에서 내려 경포호를 마주 보는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았다. 경포호를 둘러싼 갈대가 하늘거리며 호수가 빛이 났고, 그래서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벤치로 와 앉았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호수를 바라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앉아있었다.
나는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설렘이 있다. 이젠 오히려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그 차이와 차별에서 오는 이질감으로 존재를 규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문득문득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생경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가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토록 낯선 곳으로 흘러들었는가, 왜 살아서 이토록 낯선.
버스를 타고 낯선 지방의 소도시로 흘러들었던 기억이 났다. 늦은 밤이 다 되어서 도착한 지방의 낡은 버스터미널이었다. 지도에서 보았던 지역명에 전구알이 박혀 반짝이는 톨게이트를 들어서면, 나는 그때부터 환상에서 깨어났었다. 아니, 마치 새로운 환상으로 입장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도착하는 낯선 도시에 대한 느낌은 굉장한 이질감이 섞여 있었다. 나를 매우 낯선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버스와 터미널이었다. 어디로든 가서 다른 어느 사람들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거리를 걷더라도 낯선 곳과 낯선 이들과 나를 섞일 수 없게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스와 터미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늘 그 주위에서 맴돌았다.
버스를 타고 타지를 여행하는 것과 자가용을 타고 타지를 다녀오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버스는, 내가 그 지역으로 스며드는 확실한 이질감이 있었지만, 자가용은 마치 그 지역이 차를 타고 있는 나에게로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현실적이고 자가용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자가용 속에서 나는 언제든 익숙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존재였다. 잘못 들어선 길은 돌아서 나올 수 있고, 이른 시간이든 늦은 시간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현실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마치 꿈에서 깨고 나면 내 방일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버스는 깨어나도 익숙하지 않은, 꿈이 아닌, 현실과도 같았다. 때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날 수 없는, 뿌리치려 해도 뿌리칠 수 없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우린 7번 국도를 타고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해안도로를 타고 질리도록 바다를 보다가 지겨워지면 내륙으로 들어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바다가 지겨워질 수가 있단 말인가.
역시나 동해는 아름답고, 생동하고 있었다. 오두막이 작은 빌리지를 형성한 바닷가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캠핑 오토카와 케빈 빌리지, 아메리칸 빌리지 등이 모여 있는 휴양 해수욕장이었다. 해수욕장은 ‘망상’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매우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고운 모래사장이 사막을 연상하게도 하고 청록의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 동해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해수욕장이었다. 한동안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어대다가, 멀어지는 파도에 겁도 없이 다가갔다가, 다시 넘쳐오는 파도에 한참을 물러섰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리고 정동진에서 언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텅 빈 해수욕장에 서서 나는 다시 간절한 마음이 되었다. 저 빌리지의 작은 오두막 하나가 내 것이었으면. 문을 열고 나의 작은 집을 나서서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내 안의 오래 해묵은 그리움쯤은 씻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외로움보다 그리움이 더 짙다던 내 마음속 그리움의 대상은 마치 바다인 것 같았다. 나는 오래전 바다를 떠나온, 목마른 물짐승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돌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나는 다시 한번 바다와 이별을 했다.
동해시를 지나면서 우린 시내로 들어섰다. 표지판에서 보았던 ‘천곡 동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동굴을 본 적 없던 우린 국내 유일의 도심 속 동굴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습한 동굴 속을 따라 걸으며 불현듯 나는 내 몸속의 하나의 길을 떠올렸다. 어둡고 깊고 습하고 은밀한 심연의 동굴을.
다시 7번 국도에 올라 차의 속력을 높였다. 해가 어느새 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신도로로 들어서자 구불구불한 길가에서 해변이 길게 보였다. ‘맹방 해수욕장’이라는 표지판 아래로 깎아질 듯한 절벽과 해변이 이어졌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더욱 아름다웠다. 수평선이 희뿌옇게 번져가고 있었다. 바다가 저 멀리 퍼지면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바다를 오래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아하니 정말 돌아갈 시간이었다.
7번 국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울진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내륙으로 들어서기로 했다. 울진 죽변항에서 저녁으로 대게를 먹고, 바다를 등지면서 점점 내륙으로, 세상으로 들어갔다. 울진에서 봉화, 영주를 거쳐 55번 국도를 타고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어둠이 낮게 깔린 봉화의 굽이진 산길에서 기름이 바닥 나 잠시 불안에 떨기도 했고, 영주에 들어서서 눈보라와 강풍에 휘청이기도 했지만 장장 스물한 시간 만에 우린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한 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이 밤, 잠에 들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동해를 보고 왔던 일이 꿈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오늘 찍은 사진 속 동해는 마치 관광용품점에서 산 엽서사진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바다는 언제나 그랬다. 그리움을 못 이겨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 길에서부터 나는 다시 바다를 그리워했다. 난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고 그리웠다고 울먹이며 슬퍼하지만 나는 언제나 돌아서고 만다. 그리고 바다는 언제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