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영어를 이제 막 배우는 사람들이 아주 헷갈려하는 질문과 대답 방식이 있다.
바로 Yes라고 대답하면 정말 yes인 것이고 no라고 대답하면 no라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데 대체 왜 이 대답이 대화를 미궁으로 몰아가고 오해를 낳게 할까. 참고를 위해 아래에 가상의 대화를 만들어보았다.
누군가 어제 잠을 푹 잤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So you're not tired?(그럼 안 피곤하겠네?) 잠을 푹 잤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다면 영어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안피곤하지?'라고 물었으니 'Yes.'라고 답한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Why?'라고 되묻는다. 잠을 푹 잤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다는데 왜 피곤하지 않냐고 다시 묻다니? 내 대답을 못들은 것인가, 내가 잘못 말한 것인가? 다시 'I'm not tired'라고 대답하고 대화는 엉거주춤 마무리 된다.
이 사람은 피곤하다는 것일까 피곤하지 않다는 것일까? 대화 내용만 놓고 보면 피곤한 상황이다. 의도치 않게 긍정문(yes)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해석되는지 같은 대화를 한국어로 옮겨 비교해보자.
- 어제 잠 너무 잘 잤어.
- 그럼 안피곤하겠네?'
- 응.
깔끔하고 명확하다. 화자는 피곤하지 않은 상태이고 상대방도 오해 없이 알아 들었다. 하지만 영어에서라면 말이 달라진다. 영어의 yes는 문자 그대로 yes다. 질문자가 부정문으로 질문해도 내가 yes라고 하면 긍정이 되고 질문자가 똑같이 부정문으로 질문해도 내가 no라고 하면 no이다. 설명을 듣고 보면 한국어보다 훨씬 쉽고 직설적인 화법이다. 단지 질문자의 질문에 따라 나의 답변의 성격이 결정되는 우리나라식 대답 방식에 익숙해져있기에 복잡하고 어려워 보일 뿐이다.
나도 yes는 조건 없이 yes이고 no 역시 단순히 no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억이 있다.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조별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한 장소에서 모이기로 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두 모였는데 피터라는 한 친구만 오지 않았다. 문자나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어 모두가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 아까 저기에서 피터 봤는데? 초록색 옷 입고 있지 않았어?'라고 말하자 다른 친구도 '아 그게 피터였구나. 그런데 왜 안오지?'라며 나에게도 피터를 봤냐고 물었다. 나는 후문으로 와서 그 앞을 지나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오해와 혼란이 범벅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친구: Didn't you see Peter then? (그럼 피터 못 봤겠네?)
나: Yes. (응)
친구: So you did see him? (그럼 봤다는 거야?)
나: No. I didn't. (아니, 안 봤다구)
친구: So you didn't see him, right?. (그래서 못 봤다는 거지?)
나: Yes! (응!)
친구: What? (뭐?)
이렇게 몇 번의 질문과 답이 오가고 결국 대화는 어색하게 끝나버렸다. Yes라고 답을 해도 뒤에 'Yes, I didn't.'처럼 부연 설명을 붙여주거나 말하는 사람의 톤에 따라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확신에 차 대답하는 yes는 당연히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참 뒤에야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깨달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저기에서 no라고 대답했는데 상대가 저렇게 반응을 한 건지, 분명 yes라고 했는데 왜 대화가 저렇게 이어지는지 몇 번을 다시 돌려보고 머리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등 오랜 훈련과 반복 연습 끝에 완벽하게 그 사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텍스트와 화법으로부터 의미를 파악하기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나의 쥐어짜내기식 해석을 곁들여 한국인의 심리를 들여다봤다. No라고 하고 싶어도 yes를 외쳐야하는 한국인의 심리. 괜히 서로 번거로운 일 만들지 않기 위해,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가기 위해 yes라고 말하는 예의바른 나라의 국민들. 식당에서 피자도 취향에 따라 각 한판씩 시켜먹는 서양 사람들에 반해 우리는 업주 입장을 생각해 메뉴를 통일하려고 노력하는 예의바른 나라의 국민들이다.
- 안피곤해?
- 네.
- 배 안고파요?
- 네.
속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예의상, 분위기상 그냥 그렇다고 둘러댈 때가 많다. 분명 나는 배가 고픈데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니 나도 괜찮다고 한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데 다수가 그렇다고 하니 마음에 든다고 하고 부담되는 부탁을 거절하고 싶어도 무례해 보일까봐 알았다고 말한다.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는 게 왜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가끔은 뻔뻔하다고 눈총을 받아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좋겠다. 혹시 누군가 눈치 주면 영어랑 잠시 헷갈렸다고 둘러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