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득이하게 영어수업이 있는 날 지방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학생 한명 한명에게 따로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이번 하루만 다가오는 화요일 대신 월요일에 수업을 해도 괜찮냐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하필 그 월요일이 대체 휴일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이 흔쾌히 괜찮다고 답변을 보냈는데 한 학생에게만 해석하기 모호한 답변이 왔다.
'대체 공휴일 오전 열한시에 수업이요? ㅋㅋㅋㅋ'
일반적인 질문이지만 나에게 문제 되는 부분은 'ㅋㅋㅋㅋ'이었다. 중고등학생이 보낸 문자라면 이해가 될 텐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회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기에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대체 휴일에 수업하자는 나의 제안이 터무니 없어 실소한 건가? 그런 제안을 한 나를 비꼬는 건가? 아무 뜻 없이 붙이는 언어 습관인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답변을 보냈다.
'만약 불편하시다면 휴일인 월요일 말고 수요일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답변으로 '월요일 열한시에 괜찮아요 ㅋㅋ'라는 문자가 왔다. 첫 번째 문자의 ㅋㅋㅋㅋ은 그저 아무 뜻 없는 습관일 뿐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이후에도 이 학생은 내가 과제를 내고 제출할 용도로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링크를 공유하자 '이 채팅방의 목적은 뭐죠? ㅜㅜ'라고 메시지를 보내서 내가 채팅방을 만든 게 잘못되었나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ㅜㅜ는 단순한 습관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나와 J는 번역을 할 때 개인적으로 일을 의뢰받아 하기도 하지만 주로 번역 에이전시를 통해 일을 받는다. 그런데 J와 일과 관련해 소통하던 에이전시의 직원에게도 매우 특이한 언어 습관이 있었다. 그 분은 늘 새로운 일을 제안할 때 '번역가님, 이런 이런 작업이 있는데 가능하세요? ㅋㅋㅋㅋ'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끝에 ㅋㅋ을 붙였다. 혹시 웃긴 내용을 번역하는 건지, 혹은 말도 안 되는 작업이라 웃는 건지,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기가 왠지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분에게는 아직도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질문에 대한 특이한 답변이었다. 어떤 일을 맡고난 후 '데드라인은 다음주까지 인가요?'라고 문의하면 '앙ㅋㅋ'이라는 답이 왔다. 분명 이건 반말인데 일로 연결 된, 얼굴도 본 적 없는 소속 번역가에게 반말을 할 리는 없고 분명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유행인 것 같기도 하고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앙'이라고 답이 오니 J는 그분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가까운지 고민하게 되었고 소통이 어색해지기까지 했다. 얼마 후, 그 분이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앙'의 의도는 끝까지 알아낼 수 없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
나이가 들면서 관리의 필요성을 느껴 요즘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내가 태어나서 받아본 마사지 중에 최고라고 말씀드릴 정도로 관리해주시는 분의 손길은 엄청 나다. 가끔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시는데 이번엔 서핑 얘기가 나왔다.
피부관리사님: 혹시 서핑도 하세요? 양양이 대박 좋다던데.
나: 네, 양양 종종 가요.
피부관리사님: 오 완전 대박. 그거 운동도 완전 되죠?
나: 네, 유산소랑 근력 운동 다 되죠.
피부관리사님: 와 진짜 미쳤다리.
나이대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내가 너무 올드한 건지, 이 분이 나이보다 젊은 건지 유쾌하면서도 특이한 대화였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 대화가 위의 두 에피소드까지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마다 성격만큼이나 다른 언어 습관의 이유는 무엇일까. 친하지 않은 사이,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ㅋㅋㅋㅋ와 ㅜㅜㅜㅜ를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질문 안에 있었다. 친하지 않고 불편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친밀함을 표현하고자 허물 없는 단어의 도움을 빌린 것이었다. 친구에게 말하듯 친근한 말투로 어색한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내려 한 시도인 것 같았다. 너무 주관적인 해석일수도, 미화한 추측일지도 모르나 충분히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성향과 성격이 다른 만큼 갖고 있는 언어 습관도 다르다. 각자의 성격이 지금의 언어 습관을 형성했을 수도 있고 살아 온 환경이 그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얼마 전 SNL에서 사회 초년생 여자 기자 말투를 그대로 살린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매우 공감한다는 의견과 여성을 무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역할로 그렸다는 의견이었다. 꼬투리를 잡는 기사가 있었고 여혐논란이 일었다. 난 굳이 여성 비하의 프레임 안에서 이 상황을 보고 싶진 않다. 제작진은 '20대의 애환을 다루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 모습은 여자건 남자건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20대의 모습이다. 이들의 어리숙해 보이는 말투는 그 세대의 애환이자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밝아 보여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상냥해야 한다. 끝없이 내려오는 지시에 기계적으로 답해야 하는 회사원이 '넵병'에 걸린 것처럼 이들에겐 ㅋㅋ과 ㅜㅜ 그리고 과장된 리액션이 소통을 유연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그런 그들의 말투를 잠시나마 판단하고 가볍게 여겼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언어 습관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형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고유한 언어는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 그들의 애환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불편한 상황을 즐겁게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을 드러낸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 황현산,《밤이 선생이다》
인용한 문장의 맥락을 따지면 이 논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용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과 언어에서 사람과 삶의 맥락을 본다는 문장을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