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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21. 2021

트래비스 스캇이 알려준 것

친구가 나와 내 쌍둥이 언니(이후 J) 포함 세 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링크를 하나 보냈다.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나이키 운동화 응모 링크였는데 난 생전 뭘 응모해도 당첨된 적이 없기에 그런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해봤자 어차피 되지도 않으니 관심없다고 딱 잘라 말했고 친구는 손해 볼 거 없으니 한번 해보기나 하라고 툭 던졌다. 결과는 당일 바로 나온다고 했다. 성격 급한 나에게 빠른 결과 발표는 매우 만족스러운 절차다. 두 시간 후, 나만 빼고 둘 모두 당첨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럴 줄 알았다. 난 된 적이 없다니까!


그때까지도 난 그게 그렇게 엄청나고 대단한 건지 몰랐다. 왜 사람들이 줄 서서 운동화를 사고 온라인 쇼핑몰 서버가 폭주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한 켤레 운동화가 바로 저 유명한 트래비스 스캇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에디션이었다. 20만원 구매가에 리셀가는 150만원에서 200만원이 넘는 운동화였다. 주변사람들은 난리가 났고 자기에게 팔라며 제안하는 사람들도 여럿 나왔다. 원래 운동화를 직접 신으려고 했던 둘은 마음을 바꿔 리셀을 대행해주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리에 앉아서 클릭 몇 번으로 백만 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기쁘고 부럽다는 마음보다는 충격이 더 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떻게 이런 세계가 있을 수 있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굴러 들어온다고? 이걸 이 값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족 단체방에 상황을 설명했더니 아빠는 너무도 진지하게 범죄에 연루된 것 아니냐고 의심했고 엄마는 자기 아이디로도 응모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빠는 그 즉시 온갖 종류의 응모사이트에 모두 가입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꼬박꼬박 응모하고 있지만 한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무언가 내 머리를 탁 쳤다. 여기에서 금액을 무한대로 뻥튀기하면 부동산 시장이 되는 거였다. 요즘 전 국민이 혈안이 되어 있는 부동산 시장이 금액만 다를 뿐 결국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보 있는 자가 탐색하고 자본 있는 자가 투자한다. 차익을 남겨 불어난 돈으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재산은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난다. 너무 단순한 추측이지만 멀리서 본 바로는 그렇다.  


J의 지인은 목동에 오래된 아파트를 7억에 사서 살고 있었는데 그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두 배로 뛰어(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데 그렇게 올라서 정말 의아해 했다고 한다) 거기에 대출을 얹어 반포에 있는 20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요즘 이런 사연은 셀 수 없이 많다. 모두 먼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다.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적어도 내 나이 또래에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둘 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이 슬슬 결실을 맺고 있었다. 아, 사람들은 그동안 이렇게 살았구나. 배신감과 허무함이 한방에 몰려왔다.


‘벼락거지’라는, 마음을 후벼 파는 신조어의 뜻을 알았을 때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낀 이유다. 평생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영리한 부동산 투자로 노동으로는 벌 수 없는 목돈을 쥔 사람들과 비교 했을 땐 벼락거지가 맞았다. 내가 거지였다니...... 충격도 그런 충격이 없었다.

 





몇 년 전, 뿔뿔이 흩어져 살던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다시 함께 모여 살 계획을 짜면서 원래 집 알아보기가 취미인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서울 전체에 있는 집들을 샅샅이 훑어봤다. 그때 눈에 띈 곳이 강남 끝자락에 붙어있는 동네에 새로 짓고 있던 아파트였다. 막 개발되고 있던 동네였기에 생활편의시설도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서울이고, 그래도 강남이니 우리의 힘과 은행의 힘을 모두 끌어 모아 이사 가자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내가 강력추천했던 아파트의 몸값은.현재 십억이 넘는다.

하지만 우리는 십억 아파트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무리하지 말자는 이유로, 아직 집을 살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지 않았다. 몸값이 얼마나 더 올랐나 찾아봤더니 현재 십오억이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십억이었는데....?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따라갈 수가 없다. 아직도 가끔 가족들에게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잠시 모두가 숙연해진다.

난 정말 욕심 부리지 않고 우리 가족이 살기에 좋은 곳을 찾았을 뿐이었는데 치솟는 아파트 값을 보니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분노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과 가정법으로 말하게 된다.


운동화 팔아 돈 번 기념으로 J가 크게 쏜다고 해 셋이 모였다. 아직도 부루퉁한 나를 제외하고 둘은 기쁨과 환희를 교환했고 J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띤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 둘은 당첨되면 안 팔고 신으려고 우리 사이즈로 응모했는데 당첨됐고, 너는 무조건 팔려는 생각에 제일 비싸게 팔린다는 남자 사이즈로 응모했는데 너만 떨어졌네. 하하하하하하’


무언가 내 머리를 한 번 더 쳤다. 욕심 부리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욕심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고 순수했던 내 두 눈이 탐욕에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내 머리를 친 건 트래비스 스캇의 욕심 부리지 말라고 경고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을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미국 랩퍼 덕에 돈은 못 벌었지만 잔인하고 유용한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흘러간다 해도, 남들은 벼락부자가 된다 해도 나는 과욕 부리지 말고 분수에 맞게,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혹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 차리고 부동산 경쟁에 뛰어들라고 경고해주는 손이었으면 어떻게 하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할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과거형과 가정법이 아닌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말하게 될까. 누가 속시원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운동화는 날아갔지만 먼훗날 집이라도 잡을 수 있게 지금이라도 확실한 길잡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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