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inko Oct 22. 2021

스물일곱 개의 방

종종 영어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특정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이 한 답변을 토대로 첨삭도 하고 피드백도 주는 시간이다. 오늘의 주제는 ‘동네neighbourhood’였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간 게 언제인가요?' 


첫 번째 질문이었다. 집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대를 가득 안고 학생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것도 두 번 연속, 'Never.'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사 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태어나서 수십 년간 단 한번도...? 나는 재차 물었고 그들의 대답은 같았다. 피드백을 주고받고 할 것도 없이 짧고 허무하게 끝난 대화는 신속히 다음 주제를 찾아갔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별로 이상하거나 특이한 일이 아닌 한 집에서의 끈덕진 삶은 나에겐 매우 놀라운 삶이다. 새로운 집에서 적응할 때쯤 이미 다음 행선지를 찾아야 했던 나에게 집 검색이 취미가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나는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의 마우스 노동과 발에 쥐가 날 정도로의 발품을 통해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찾아 살게 되었음에도 늘 인터넷으로, 두 눈으로 새로운 집을 탐색하고 또 탐색했다. 


<강원도> 외할머니집, S 빌라, 가게 위 단칸방, 근화 아파트, <서울> 송파구 단칸방, 신림동 반지하, 월계동 작은고모네, <싱가포르> W 맨션, T 맨션, <강원도> 교회에 딸린 방, J 하우스, W 아파트, D 아파트, <서울> 대학교 기숙사, 동숭동 고시원, 대학로 고시원, 봉천동 다세대 주택, 군자동 R 빌딩, <런던> 대학원 기숙사, R 롯지, <서울> 능동 다세대 주택, 성수동 S 연립, 청담 H 오피스텔, 성수동 옥탑, 성수동 상가주택, <경기도> E 아파트, <서울> 옥수동 B 주택 


내가 짧게는 2주부터 길게는 2년 반을 살았던 집들이다. 늘 3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보다 열 배나 긴 30년이라는 세월을 한 집에서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살았다는, 누구에게는 더없이 평범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거다. 






고전문학 편독가인 나에게 19세기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귀족들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적당한 집안에 잘 태어나기만 하면 평생 살 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부동산이고 내집마련이고 걱정할 기회조차 없다. 

창문이 많은 우아한 저택의 고요한 서재에서 일렁이는 햇볕을 맞으며 책을 읽는다. 온통 초록색 이파리로 둘러싸인 온실에서 티타임을 갖고 가지런히 손질된 정원을 산책한다. 밤이 되면 정원으로 향해 있는 커다란 창을 열고 달빛과 밤공기를 들이마신 후 푹신하고 넓은 침대에서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이 시대 여자들은 결혼 하나에 목을 걸어야했다는 점과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손님들과 시답잖은 대화를 간간히 해야 했다는 점만 빼면 아주 흡족한 삶이다.


귀족들의 삶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대저택을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겁도 많은데 거기다 상상력까지 넘쳐흐르는 나에게 비어있는 방과 숨은 공간이 많은 집은 《제인 에어》와 《어셔가의 몰락》의 배경이 될 뿐이다. 서재는 없어도 되고 온실도 필요 없다. 정원도 포기할 수 있다.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해가 잘 드는 창문 앞 나무 테이블과 종종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작은 테라스면 더할 나위 없이 족하다. 하나만 더 붙이자면, 창밖으로는 그저 초록색만 보이면 좋겠다. 땅덩어리 좁은 한국에서 이 정도면 과한 바람일 수도 있겠다. 


내가 집에 집착하는 이유는 집은 곧 삶이기 때문이다. 집은 삶이고 그 삶을 사는 나 자신이다. 집 안에서 사람은 먹고 자고 성장하며 변화한다. 무수한 시간의 조각을 채우며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살아간다. 이렇게 가까운 존재인 사람과 집을 어떻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단 말인지. 


가족들과, 친척 또는 타인과, J와 둘이 또 혼자서 몸 뉘었던 곳들을 이렇게 죽 늘어놓고 보니 나라는 작은 사람 하나가 참 많은 곳에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깡시골에서 상경한 것도 신기한데 어쩌다 외국에까지 나가서 살아보고 신기한 일투성이다. 경험도 돈으로 사야하는 시대에 나만이 가진 특권이다. 


남들은 겪지 못했던 더럽고 치사하고 즐겁고 유쾌했던 모든 일들을 이 스물일곱 개의 집에서 겪었다. 나의 집 목록은 끝말잇기처럼 맺는 단어가 없으면 계속 늘어나 서른 개를 채울 수도 있고 마흔 개를 채울 수도 있다. 까짓것 기록을 깨보자며 앞으로의 날들을 지나온 세월처럼 여행하듯 보내면 쉰 개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곳에 뿌리내리길 간절히 원하지만 혹시라도 쭉쭉 뻗어나가는 내 뿌리에 비해 화분이 작아지면 어떨까 걱정도 든다. 분갈이하지 못해 시들어가는 식물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아직 난 너무 팔팔한데, 아직 끝말잇기에 쓸 단어가 좀 더 남아 있는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러워서 그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