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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Jun 08. 2020

취업사기 당했다.

들은 것과 전혀 다르다.


 '취업사기 당했다'.

  주말 아침 출근 아닌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엔 '속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공무원 임명장을 받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모처럼 푹 늦잠을 자는 토요일 아침에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엔 알람인가 싶어 무시했다가 잠결에 주말엔 알람을 꺼놓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계장님이었다. 정신이 바짝 들다 못해 기절할 것만 같았다. 


 왜? 내가 뭔가 실수했나? 문제가 생겼나?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계장님. 전화하셨어요?"

 "응, ㅇㅇ씨. 혹시 지금 버스 있어? 출근할 수 있나?"


 지금? 오늘 토요일인데? 내가 착각했나? 황급히 달력을 쳐다봤지만 오늘은 토요일이 맞았다. 


 "아…지금요?"

 "응. 군수님이 공무원들 전부 동원하라네."

 "군수님이요?"


 지방직 공무원에게 '군수님'의 지시는 최우선 사항이다. '군수님'의 말 한마디에 승진과 좌천이 갈린다. 연차가 얼마 안된 직원들보다는 6급, 5급들이 '군수님'의 눈에 들기 위해 더욱 애를 쓰지만, 어쨌든 그 5급 6급들의 지시를 받는 말단 공무원들 역시 '군수님'의 뜻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그 '군수님'이 군 소속 공무원들을 전부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어쩔 수 있나. 출근 해야지. 


 "그런데 왜…어디로 가면 될까요…?"

 "ㅇㅇ체육공원이라고 알아? 오늘 거기서 행사 있거든."


 듣자하니 오늘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있는데, 아침에 행사장을 둘러보신 '군수님'께서 보시기에 관중석이 텅텅 비어있으니 흡족하지 않으셨더라. 그러니 공무원을 불러서 자리를 채워야겠다는 이야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입사 한 달도 안 된 조무래기가 뭘 하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바탕 비명을 내지르며 베개를 두들겨패다 곧장 출근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출근 명령에 분노와 억울함이 솟구쳐오르는데 마침 문자가 온다. 군청에서 온 단체 문자다. 내용은 전화로 들었던 것과 같지만 마지막 한 마디가 압권이였다. 

 

 [오늘 출근 여부는 인사에 반영하겠습니다.]


 왜? 대체 왜? 왜???

 최소한 전날 저녁이라도 미리 언질을 줬으면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진 않았을터였다. 다짜고짜 주말 아침에 전화해서 출근하라고 해놓곤 출근 여부를 인사에 반영하겠다니. 나야 다행히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병원 예약이나 약속, 다른 업무가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 마음이 어떻든 버스는 움직이고 나를 체육공원까지 데려다 놓는다. 


 체육공원에 도착하니 나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온 공무원들이 가득하다. 절반은 공무원이고 절반은 군인이다. 군인과 공무원의 공통점은 가장 만만한 동원 인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 날은 오후까지 관중석에 앉아 지역주민(공무원 포함)과 지역 군부대 소속 군인들의 퍼레이드를 관람하며 보냈다. 허무했다. 이게 바로 지방 공무원의 현실인가 싶었다. 




 나는 국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한 유명 대학 병원에서 3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응급사직했다.

 원래부터 간호사 생활을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3년만 버텨서 목돈을 손에 쥐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그런 무른 마음으로 일할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3년은커녕 3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목돈 대신 우울증 진단서를 들고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병원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자살사고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울하고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하는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짧은 병원 생활은 물론이고 대학교 4년 내내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면서 나름대로 쉬지않고 바쁘게 살아왔다. 주중에는 학교를 다니며 실습과 과제를 하다가 주말에는 과외를 세 탕씩 뛰고 중간중간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가 되니 너무 이상했다. 이상하고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쉬면 안되는데. 무슨 일을 하지? 어떻게? 뭘 해야하지? 


 가지고 있는거라곤 간호사 면허증 하나뿐, 그럴듯한 스펙도 활동 이력도 없다. 그래도 두 번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꿈에서 병원 근처를 걷다가 병동 사람들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욕했다. 마지막으로 병동을 나올 때 나를 노려보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병원은 싫었다. 앞으로 병원쪽으론 잠도 자지 않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병원이 아니면 어디로 가지? 

 내 목표는 명확했다. 9 to 6, 월 200이상. 이왕이면 남들 일할때 같이 일하고 쉴 때 같이 쉬는 직장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취직한단 말인가? 이력서를 돌리나? 자소서를 쓰나? 뭐부터 준비해야하지? 


 간호학과는 특별한 스펙 없이, 최소한의 학점과 어느정도의 영어 성적만 있으면 취직이 보장되는 편이다.  단 대부분의 졸업생이 1차적으로 대학병원 또는 상급병원 이상에 취직하기를 원하고 실제로도 병원 관련 취직 외에 일반 사기업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일반 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가 매우 힘들고,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도 정말 드물다. 사실 일반 사기업에 갈거면 굳이 간호학과를 올 필요가 없기도 하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 많은 간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2019년 기준 간호대학 졸업생 수는 12,103명. 입사 1년 이내 신규 간호사의 절반이 병원을 떠난다. 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페이스북을 뒤져봤다. 학교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간호학과의 얼굴마담 선배는 병원 퇴사 후 아주 유명한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살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대단했다. 근데 나는 저렇게는 못 할것 같았다. 더 이상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싶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면 족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대기업에 합격한 한 사람을 빼놓고 나머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SNS는 자랑하기 위해 쓰는건데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들어가지 못하면 자랑할만한 소식이 못된다. SNS에 올릴 일이 없다. 


9 to 6, 월 200이상 주는 직장이 필요했다. 열정, 성취, 자아실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건 포기하고 몇 달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공무원이었다.

 병원 일, 현장 업무가 싫었다. 사람 대하는 일도 썩 좋아하진 않았다. 주말에는 쉬고싶고 야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럼 결국엔 공무원밖에 답이 없는 듯 했다.


 공무원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행정직을 칠까, 보건직을 칠까, 간호직을 칠까. 서울로 갈까, 고향으로 갈까, 국가직을 칠까. 7급 준비를 할까, 9급 준비를 할까. 이전까지는 관심이 없어 몰랐으나 공무원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와중 마침 연고지 보건소에서 일하는 지인의 '여기는 현장 업무가 없다. 책상에 앉아 일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말만 들으면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직장이 따로 없었다. 결국 나는 어렸을 적 살던 군 단위 지역의 간호직 공무원 시험을 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해 이듬해 가을 입사했다. 


 그런데 얘기로 들은것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건 명백한 취업 사기였다. 

 툭하면 주말 출근에 별별 특이한 지원 업무 명령이 떨어지고, 월급은 200은커녕 150만원 전후, 자리에 앉아 컴퓨터만 두드린다더니 민원인 응대가 주된 업무였다. 나는 완전히 속았다. 



교육통계서비스, 학과계열별 졸업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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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NURSE, 1년 이내에 신규간호사 2명중 1명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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