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여행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데 구스타프가 물었다.
"비도 오고 흐린데 지금 나가는 건 너무 이르지 않아? 아침에 모닝 마켓을 구경하고, 그다음 차를 타고 가는 게 어떻겠어?"
하지만 난 어제 이미 모닝 마켓을 돌아보았고, 오늘은 시라카와고를 다녀온 후에 나고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그들과 함께 했으면 시라카와고 여행에 또 어떤 재미와 변수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일정도 빠듯했고, 어딘가 어벙하고 영어가 아직은 서툰 구스타프와 함께 할 여행이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예정대로 짐을 리셉션에 맡기고 나왔다.
차창 밖으로 안개와 빗물에 젖은 산과 나무들. 이렇게 이른 아침의 분위기가 좋다. 시라카와고는 첫눈에도 너무 아름다웠다. 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사진 찍는 데 몰입했다. 비가 내려 정취가 더욱 깊었다. 그렇게 9시 50분에 도착해서 11시 반이 되도록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려 돌아다녔더니, 나중에는 너무 춥고 피곤해서 넋이 나갔다.
나고야행 버스가 12시 05분이라 아쉬웠지만, 사실 춥고 피곤해서 더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물론 중간에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충전을 시켰더라면, 더 오랜 시간 더 많이 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사진이 만족스러웠다. 이제 이 카메라에 적응이 되었고, 사진을 찍는 기쁨이 커졌다. 결과물이 좋다 보니 더욱 그랬다.
일본의 음식은 내게 매력이 없었다. 히로시마에서 먹었던 것 빼곤 전부 입에 맞지 않았다. 나고야 역에 내려 지하상가에서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하나를 골라 들어갔는데, 메뉴에 있는 음식의 종류가 아마 50가지는 되는 것 같다.
크지 않은 식당은 남은 자리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난 어떤 할아버지가 식사하고 있는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참치 사시미를 시켜놓고 후회했다. 위생적일까? 식당은 대부분 혼자 온 손님들이 합석한 경우였고, 손님은 많지만 조용했다.
한국에서라면 너무 이상했을 상황이지만, 일본에선 혼자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한국 할아버지였으면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을 텐데, 할아버지가 영어를 하실 리도 없고, 우린 그렇게 테이블에 마주 앉아 멀뚱멀뚱 말없이 각자의 식사를 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이라 치고 혼자여도 괜찮겠지만, 나이 든 어른들이 이렇게 혼자 나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하는 것이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그들도 나름 그것이 편한지는 모르겠으나.
사시미 정식은 딱히 신선해 보이지 않았고 반찬도 형편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들이 많은 기차역 주변에서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데이터가 동나는 바람에 나고야 역에 도착해서 호스텔까지 구글맵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여행자 안내소도 없고, 교토처럼 버스 정류장에 도우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몇 바퀴를 돌다가 결국 택시를 탔다. 역에서 3킬로라고 했으니 택시비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정말 가까운 거리였고, 택시가 도착하자마자 호스텔 직원 둘이 마중을 나온다. 로비의 바가 정말 근사했다. 난 짐을 풀자마자 3층 공용 공간과 키친을 겸한 곳에 가보았는데, 별로 머물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가 있는데 왜 여기서?'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마지막 날인데 돈 좀 쓰지'하고 바에 내려갔다.
레드 와인을 한잔 하면서 옆에 앉은 일본 청년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영어가 짧은 그와는 긴 대화가 불가능했다. 혼자서 일기를 쓰다가, 나처럼 혼자 온 걸이 있어서 말을 걸었더니 한국인이었다.
카페들을 돌아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러, 일본에 2주째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인다고 했더니 28살이라고 했다.
너무 어려 보이는 데다가 너무 순해 보여서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일행에게 가봐야 한다며 일찍 들어갔다.
또 혼자다. 그러나 이 기록을 마무리할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간다. 큰 기대 없이 왔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많은 사람들, 풍경들, 분위기, 한국과는 비슷한 듯 절대로 비슷하지 않은 일본의 단면들을 만나게 되어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