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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10. 2022

보길도에 가보셨나요?

  -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겨울


  하루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하나? 그래서 어제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더 나은 사진도 찍어봐야 하나? 그러고 나서 내일 대흥사 템플 스테이에 들어갈까? 여기 도미토리도 하루 자보니 익숙해져서, 더욱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커피, 달걀로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그럼  일몰이 시작될 때까지 오늘은 뭘 하지? 호스텔 주인에게 근처에 가볼 만한 데를 물으니 완도에 가보라고 한다. 그래, 완도에 가자. 


  차를 몰고 나와 완도 안내지도를 펼쳐보니 딱히 마음 가는 곳이 없다. 아래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면 아늑한 카페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거기 가서 일정도 생각해보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그래야지 하고 내려갔는데, 그곳은 그냥 배가 들고나는 선착장일 뿐이었다.


  배 운항 표를 보니 보길도가 눈에 들어왔는데, 보길도는 15년 전에도 가봐서 새로울 것이 없을 듯했고 게다가 차까지 싣고 가려면 배 삯으로만 5만 원이 넘었다. 자세히 보니 보길도까지는 직항이 아니라, 노화도로 가서 다리로 이어진 육로를 통해 보길도로 가는 것이었다.


  복잡해 보였다. 새롭지도 않고, 비싸고, 이동도 복잡하다. 그냥 완도에 갈까? 망설이다 다시 차로 돌아왔는데 완도보다는 보길도가 낫겠다. 15년 전 흥미진진했던 추억의 보길도이므로. 결국 난 보길도로 가기 위해 노화도행 배표를 끊었다.


  차를 배에 싣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계단을 올라 선실에 들어섰더니, 웬걸, 정말 깔끔하고 승객도 몇 명 되지 않았다. 선실들은 큰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고, 깨끗한 바닥은 그렇게 따끈할 수가 없다. 잘했어! 난 나의 선택에 아주 만족하여, 바다 쪽으로 나있는 낮은 창턱에 다리를 쭉 펴 올렸다.


  노화도에서 보길도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였고 새로 난 다리가 두 섬을 연결하고 있었다. 보길도의 옛 선착장은 여객터미널이 없어져서인지 좀 황폐해진 듯도 하다. 차 연료를 확인해보니 눈금이 네 칸밖에 안 남았다. 여긴 차로 둘러보아야 하는 곳일 텐데..


  내비게이션도 구닥다리라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헤매던 끝에 온 길을 다시 돌아, 윤선도 유적지인 ‘세연정’에 겨우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니 맞은편 토산물 점포에서 한 아주머니가 열심히 나를 부른다. 안 사도 되니 와서 구경하라고. 관광지도도 준다고.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마침 안내지도가 필요했던 참이라 가봤다. 


  그 옆 가게에서도 똑같이 나를 불렀지만 고객들은 각자 필요에 의해 어떤 말에 꽂힐지 알 수가 없다. 점포의 아주머니는 냉동 전복살을 싼 값에 팔고 있었다. 세 팩에 오만 원이라고 해서 구례 언니 집에 택배로 부쳐 달라했다. 나는 여행 중이라 나중에 전화로 주문하겠다고 했더니 명함을 준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세연정 입구에 들어섰는데 뭐 기념관 같은 건물 하나 달랑 있고 별다른 게 안 보인다. 기념관을 휙 둘러보고 나와 벤치가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전에 갔던 그 연못이 맞다. 그때 퍽 인상적이라고 여겼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좋아했었는데...


  바로 옆이 학교여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축구를 하느라 시끄럽다. 조그만 동백 동산이 있어서 그곳을 넘어 다시 입구 쪽으로 나왔다. '별 것 없네'하고 돌아 나오다, 벤치에 앉아 잠시 찍은 사진을 뒤적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연못가는 길과 평행으로 난 오솔길에 굽어진 모퉁이가 보였다. 


  저기나 산책해볼까 하고 다시 방향을 틀어 가보았다. 걷다 보니 아까 본 연못의 건너편에 또 다른 길이 보여서 그쪽으로 가보았다. 기념관에 있던 세연정 배치도를 보면, 내가 본 연못의 뒤편에 또 하나의 연못이 이어져 있어야 했다. 아마 그곳을 보고 싶어 다시 돌아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아까 본 연못은 전체의 삼분의 일도 안 되었다. 양파 껍질처럼 자꾸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연못 가운데로 이어지는 정자에 올라가 보았더니, 아! 이럴 수가!

  사방이 트인 프레임들 사이로 드러난 풍경들은 그 어떤 현대적 건물의 통 창 조망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 윤선도!'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연못을 지었지?


  빙 돌아보면서 여기저기 서보니, 자리 잡고 앉아 하루를 즐길 만한 곳이 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즐기자면 다 도는데 한 달은 걸릴 것 같았다. 정말 다시 와서 놀다 가고 싶은 곳이다.


















  세연정을 나와 차 안에서 보길도 여행 안내도도 보고, 월급이 들어왔길래 여기저기 이체도 하고 하다가, 노화도 포구에 전화해서 완도 막배를 물어봤더니 5시 20분이란다. 지금이 3시 반이니까 '공룡알 해안'과 전망대 노을을 보려면 여기서 하루를 묵어야겠다.


  중리의 그 갈라지는 바다는 한 번으로 족하고 그 한 번의 흥분이 너무 컸으므로 다시 가서 깨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호스텔 주인도 왠지 마음에 안 들었다. 별로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고 어쩐지 내가 너무 싼 도미토리에 묵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치가 보였다.


  그래, 보길도에서 자자. 이게 자유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전복 아주머니에게 민박집을 슬쩍 물어볼까? 혹시 저 아주머니 집에서 묵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아는 민박집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민박은.. 아는 데가 없는데... ” 그러더니 “우리 집으로 가까?” 한다. 민박은 해본 적이 없지만 오늘 아들이 육지 가고 없으니까 아들 방에서 자면 된다고.

  "오홍! 딱 좋아!" 난 공룡알 해변에 갔다가 노을까지 보고 돌아오겠다고 아주머니에게 말하고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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