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보다 질겼던 소개팅

Ep.9 갈비보다 질겼던 소개팅

by 재미나이


Darling, this isn't just a car. It's a statement. About us.

이미지 속 영어

Woman's speech bubble (Left): "And this is supposed to impress me?"

(이걸로 저한테 깊은 인상을 주려는 건가요?)

Man's speech bubble (Right): "Darling, this isn't just a car. It's a statement. About us."

(자기, 이건 그냥 차가 아니야. 이건 선언이지. 바로 우리에 대한.)



“나 오늘 골프 치고 왔어요. 재미나이씨도 오세요. 같이 갈비 먹죠.

여기 갈비가 아주 맛있어요. 먹어봤나 모르겠네...

여기가 어디냐면…”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방금 캐디를 갈비찜처럼 조리듯 혼낸 사람 같았다.

역시나. ‘친절’이란 단어는 그의 사전에 들어갈 틈조차 없나 보다.

흔히 남자들이 여자들을 "모시러 와서 데려가는" 그런 구태의연한 서비스?

그의 ‘고품격 스케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젠장, 내가 무슨 왕비도 아니고… 차 타고 납치라도 당해야 하나?’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나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남자를 만나면, 어쩌면 그들도 속으로

‘쟨 또 뭐야?’ 했겠지만, 나는 거의 빠짐없이 한두 가지씩 '이래서 아직 혼자인가'

싶은 구석을 발견해내곤 했다.
남의 눈에 티끌은 잘도 보이면서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더니,

나는 인간 결점 찾기 올림픽 대표라도 된 듯, 그들의 공통점을 모아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이게 바로 나의 ‘현미경 인류학’이자,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지금 뒤늦게 상담심리학을 시작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나 같은 관찰자가, 반드시 필요하니까.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아무튼 나는 그 '대들보 같은 남자'를 만나러 W호텔로 향했다.

당시 우리 집은 그 호텔과는 정반대편, 말 그대로 ‘저세상 거리’에 가까웠다.

솔직히 내 차를 그에게 보여주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그의 번쩍이는 벤츠 AMG 옆에 5년 된 내 국산차는

왠지 ‘주차장 난민’처럼 초라해 보일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늘 ‘나는 나, 내 갈 길 간다’며 당당한 여성을 자처했지만,

그날만큼은 자본주의 앞에 무릎 꿇은 하이에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30분. 지하철역에서 내려서도 한참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예쁘게 보이려고 신은 구두는 이미 ‘발목 지뢰’나 다름없었다.

“누구 찾으십니까?”

지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자,

땀에 반쯤 지워진 화장과 함께 등장한 나를 보며 직원이 환하게 웃었다.

“물 주세요.”

“네?”

“물. 목말라요…”

“아… 걸어서 오셨어요?” 직원은 놀란 듯,

거의 ‘불쌍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 불만 있냐?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힐끔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 막말하시는 분이요.”

“아, 저기 계시네요. 안내해 드릴까요?”

그가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를 부르듯.

“어이구 재미나이씨! 반가워요!

어떻게, 마음의 결정은 하셨어요?

일주일이나 시간 드렸잖아요. 하하하.”

그는 마치 주식시장 마감 브리핑이라도 하는 듯 능청스럽게 웃었다.

“오늘 말이에요, 진짜 회사 임원들이 얼마나 일을 못하는지!

눈물 나도록 혼내줬어요. 참, 재미나이씨는 무슨 차 타세요?

제네시스 어때요? G70? 아냐...G80! 재미나이씨 정도면 타줄만하잖아? 하하하.”

…뭐야, 제네시스를 동네 마실용 자전거처럼 얘기하네?

혹시 ‘자전거 사줄까?’ 그 레벨인가?

“시계가… 애플워치? 이거 어때요? 제가 커플 시계 봐뒀는데…”

그때 직원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다음 코스 준비해드릴까요?”

“아이씨, 방해되게…”

그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순간, 발렛 파킹 직원에게 지폐를 던지던 그 오만한 표정이 스쳤다.

“알아서 해. 오늘따라 임원들 진짜 짜증 나게 해서 싹 다 조져놓고 짜증나는데...

근데 재미나이씨, 오늘 옷이… 여기 여자들이랑 비교해 봐요.

재미나이씨가 제일… 통통한 거 같지 않아요? 얼굴도 조금 큰....아니에요...하하하하.”


…내 귀가 고장 났나? 방금 뭐라고 했지?

최고급 갈비찜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지만, 나는 문득 그 향마저 역겹게 느껴졌다.
내 위장 속 ‘자본주의 하이에나’조차 식욕을 잃은 듯했다.


One Step Closer, One Heel Down.(한 걸음 더 가까이, 한쪽 굽은 내려놓고.)


작가의생각: 가장 빛나 보이는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또 얼마나 많은 구두 굽을 부러뜨려야 할까요 그 길 끝에 기다리는 것이 ‘만 원짜리 허세’이든, ‘냉소적인 시선’이든, 우리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깁니다.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고통스러운 여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어디서든 나만의 ‘정상’을 만들어갈 힘을 준다는 사실 아닐까요. 때로는 목적지보다,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이 훨씬 더 값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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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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