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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Oct 15. 2021

 이 남편과 그 남편은 왜 이리 다른가!

친구의 남편이 먼 길을 갔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이문재







잇님의 블로그에서 아침에 이 詩을 읽었다. 


힘들게 한 것들이 언젠간 우리 이야기의 힘이 되는 일도 있을 게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정이든, 관계이든 그건 어째도 상관없다.



지난 토요일, 예정된 일과를 끝내고 보니 오후 4시였다. 내 일정이 끝나면 지인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울울창한 광릉수목원길을 달려 수목원을 지나면 포천 고모리 저수지가 있다.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곳을 향해 달리면서 지인께 말했다. “전화해서 나오라 하세요!” 상대는 다른 사무실의 실장이다. 남편과 함께 사무실을 운영한다. 나오라 한다고 냉큼 좋다고 했단다. 픽업하면서 내가 한마디 한다. “튕기는 맛이 있어야 말야. 나오란다고 그렇게 넙죽 나와?” 그녀가 성격좋게 히히, 웃었다.



요새는 외곽에 자리 잡은 옷집이 예상을 뒤엎고 호황이다. 실장이 탔으니 자연스레 그곳을 들른다. 나는 애초에 관심이 없는 곳이다. 발견은 내가 했는데 매번 고객은 그들이 된다. 더군다나 내 취향의 옷은 없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그녀는 마음에 드는 족족 쇼핑을 한다. 레쟈 숏자켓을 입어보라고 권한 건 나다. 검은색과,회색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카키면 더 예쁘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처럼 카키가 있단다. 그녀가 입어본다. 세 가지 색상 중 카키가 가장 분위기에 맞다. 가을이 아닌가. 이 집은 니트 종류가 많다. 니트 매니아인 지인은 이 집의 단골이 됐다. 난 보푸라기가 일어서 니트는 별로 안 좋아한다. 보풀이 인 스웨터를 입은 손녀들을 보면 진저리가 처진다. 일없이 제거기로 깎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계산을 끝낸 그녀에게 회색 니트 원피스가 손짓을 한다.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그녀다. "입어 봐!"  롱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더 날씬해 보인다. 밑단이 발목에서 머문다. 20킬로를 뺀 기쁨을 즈음, 옷 쇼핑으로 발산 중이다. 나는 그런다. "그래,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실컷 해라”. 가격도 저렴하다. 그냥 두고 갈 그녀가 아니다. 보따리는 이제 이불을 넣은 듯 부풀었다.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일하고 있는 사람 불러내더니 쓸데없는 쇼핑이나 하게 했다고 원망을 들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남편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눈에 꿀끼가 안 가신, 성격 좋은 남자이다. 우리는 그를 ‘귀염둥이’라고 부른다.


저수지 산책은 물 건너갔다. 저수지광장에 토요일이면 장이 선다. 몸이 찬 나를 위해 생강청 한 병을 사고 나니, 고구려벽화 속,  산을 닮은 무늬를 안으로 삭힌 원목 도마가 나를 부른다. 플레이팅을 겸할 수 있는 도마에 지갑을 열었다.



친구의 남편이 먼 길을 갔다. 부부는 동갑이다. 내 친구의 생일날 그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가 버렸다. 중환자실에서 12일간 사투를 벌였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닌, 친구에게 이 시간만큼은 필요했을 것이다. 병원비를 이야기할 때, 그 기간이 없었으면 “자긴 더 힘들었을 거야, 다행이야.” 했다. 



친구에겐 평생 경제권이 없었다. 돈에 애착이 심한 남편은 아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속옷부터 오만 잡다한 것을, 싸고 질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서 안겼다. 당사자는 한 개를 사도 그럴듯한 걸 입고 싶어 했고, 사용하길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본인의 만족감이 중요했지 당사자인 아내의 마음 같은 건 염두에 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생색을 냈다.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친구는 몸서리를 쳤다.



20여 년 전 일이다. 친구가 왔다. 영화를 보고 백화점엘 갔다. 그녀는 모피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땐 밍크 털이 짧게 커트 된 게 유행이었다. 부해 보이지 않고, 날렵해 보이고 깔끔했다. 400만 원이었다. 친구의 소원은 100만 원을 자기 마음대로 써보는 일이었다. 결국, 그녀가 손에 들고 간 옷은 A라인으로 떨어지는, 회색 바탕에 딥 그린이 그라데이션 된 D 메이커 코트였다. 그걸 그녀는 지금도 입고 있다. 카드 명세서가 집에 배달돼서 남편이 보면 큰 소리가 날 게 뻔하니 내 카드를 이용했다. 가격은 80만 원. 집에 가서는 30만 원이라고 거짓말을 할 터였다. 



모처럼 외출을 나오는 그녀는 늘 초조했다. 사정을 아는 나는 수시로 시계를 들여 다 보는 친구가 안타까웠지만 초조한 뒷모습은 얼굴 표정보다 더 애잔해서 일찍 헤어지곤 했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시계를 코앞에 두고 소주를 마시며 비탄에 젖어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녀의 초췌한 뒷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말했다. "난 집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야."



옷을 사 간 친구의 집에선 그날 밤 난리가 펼쳐졌다. 


남편은 “여자가 간도 크게 옷을 30 만원 짜리씩이나 샀다고?”노발대발, 정신이 나갈 정도로 화를 냈다고 했다. 친구는 이혼을 선언했다. 그 밤에 친구가 짐을 쌌다. 집을 나서려는데 남편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남편은 자신이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울면서 토로했지만 친구는 이미 목석이 되어 있었다. 속없는 나는 그녀에게 그랬다.


“어차피 난리 날 거면 밍크를 저지르는 건데...”



당시 그녀의 버킷리스트 1위는 모피코트. 2위는 악어백이었다. 지금은 입지도, 쳐다보지도 않을 모피와 악어백이 그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 건 구속된 몸과 마음의 탈출구를 위한 대체제 대상이었다고 생각했다. 효용가치가 없는 물건일지라도 애써 나를 위안해 줄 자립적인 주체로써, 또는 자기만족의 대상으로써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매일 부르짖었다고 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에겐 자신만이 중요했고, 자신의 감정만 중요했다. 이혼을 꿈꿨지만, 실행은 엄두도 못 낸 친구는 이혼이 사별로 돌아왔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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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이 들고 갈, 한 보따리의 옷과 코트 한 벌이 오버랩되면서 불안했지만, 우리의 귀염둥이, 그 집 남편을 불러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내 손에 들린 쇼핑보따리를 보고도 ‘뭘 샀느냐?’고 묻지도 않는 실장의 남편이 멋져 보였다. 나는 공연한 걱정을 한 꼴이다. 내게 이 트라우마를 선물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끼고, 또 아끼고 아끼던 그는 간다는 말도 없이 갔다. 친구는 다가올 봄의 벚꽃 향연을 가슴에 품고 있다. 우리는 함께 봄 여행을 떠날 것이다. 섬진강 둘레를 달릴 것이다. 그 날이 그녀에게 ‘화양연화花樣年華’로 오래 새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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