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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앤 Jan 11. 2024

저는 중국어를 못 합니다(我不會說中文)

중국어 이야기

지난 월요일, 대만에서의 첫 종강을 맞이했다. 와! 다음 개강까지 나는 자유다(가 아니고 미뤄뒀지만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종강을 맞이하여 학교를 오가며 겪은 일을 좀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양명산이라는 산 위에 있는 학교인데 이 학교는 서울로 따지면 남산 같은 산 위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이 학교의 턱 밑까지 올라와 본 한국 절친의 말에 따르면 남산이 아니고 북한산이라고 한다...; 당연히 도보로 출근할 수는 없고, 버스나 자동차로 올라가야 한다. 대만에 오고 나서 학교에 인사드리러 가는 날은 버스를 탔는데, 환승 1회를 포함하여 50분이나 걸렸고, 무더위에 산을 오르는데 또 기력을 쓰다 보니 너무 지쳐서 올라가서 학과장님께 인사드리기 전 10분 넘게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했다. 그날 나는 학과 조교로부터 '합승택시'에 대한 정보를 들었고, 그 이후 나는 다시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사실 교직원용 통근버스도 있는데 그 통근버스를 타고 스린역에서 내리더라도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학교 바로 아래 야경이 좋은 식당 The Top, 혹자는 타이베이101보다 여기가 야경이 더 좋다고 한다. 다만 여기까지 올라가려면 미시령 느낌의 곡선 도로를 견뎌야 한다.
날이 좋던 날 학교에서 내려다 본 타이베이
가오다오우에서 택시를 부르고 학교를 보며 가다듬는 마음. 저래 보여도 꼬불꼬불한 길은 15분 이상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신기루같은 곳이다. 올라가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택시를 부르면 대만돈 250원 정도.. 집에서 학교까지 한국돈으로 만 원 정도 하는데, 그 대신에 이 학교의 위치 특성 때문에 이 학교에 갈 때 '합승택시'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합승택시 기사가 승객 6명을 태우고 올라가는데 승객은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고, 기사는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에서 승객으로부터 더 많은 요금을 받을 수 있다. 이 택시를 타면 나는 60원(한국돈 2500원 정도)을 내는데, 더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도 같은 돈을 내는지 더 많이 내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들도 100원짜리 지폐를 내면 동전을 거슬러 받으니까 100원 이하인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혼자 타고 가는 것보다 1/4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다. 또한 택시 탑승 후 15분이면 학교에 도착하니 택시를 부른 후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통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티엔무에 살면서 우리 학교에 가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우리집이 가오다오우라는 일본계 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걸어서 5-10분 거리) 가능한 일이다. 이 택시를 타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도 고역일 테니까. 다시 한번 이곳에 집을 구한 나의 안목을 칭찬한다. (사실 그때는 합승택시라는 게 있는지 몰랐지만.)

합승 택시. 줄이 길면 30분 이상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해가 진 것을 사진에서 느낄 수 있다.
지엔탄-스린-티엔무-문화대-양명산을 지난다.


가오다오우, 이거런(高島屋, 一個人)


남편은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라, 내가 대만에 같이 오기만 하면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날 꾀었지만, 하늘의 별이나 달을 따주기는커녕 그 스스로 하늘의 별이나 달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가까이 있지만 너무 멀고, 나는 그를 볼 수 있지만, 그는 태양처럼 하늘 한가운데 둥글게 떠서 그의 온기를 지구인에게(한국인? 대만인? 모르겠다..) 나누어주느라 바빠서 일개 인간과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다. 별 보고 나가서(새벽) 별 보고 퇴근하는(새벽) 느낌이다. 위의 합승택시를 타려면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해야 했고 어느 위치에서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야 차를 보내주는데, 친절하던 남편이 회사일로 바빠지면서 점점 내가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남편은 친절하게도 한어병음으로 가오다오우(타는 곳, 다까시마야 백화점의 중국어 표현), 이거런(타는 사람, 한 사람)을 적어 주면서 연습하라고 했다. 놀랍게도 이곳 사람들은 일본어인 다까시마야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일성-삼성-일성의 고난도의 성조를 반영한 가오-다오-우를 정확히 발음해야 알아듣는다. 대만인이 중국어로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남편의 친절함이 담긴 친필 가오다오우 이거런. 남편은 내가 이걸 언제든 연습할 수 있게 식탁 옆에 붙여놓았다.

사실 저 두 표현을 입으로 읊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저걸 말했을 때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다까시마야백화점, 한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아마 듣는 사람도 내가 외국인임을 눈치 챘을텐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또 길게 뭐라 뭐라 한다. 아마도 내 말을 확인하는 차원의 발화가 아니었을까 추정하는데, '다까시마야백화점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거 맞지? 곧 차를 보내줄 테니 기다려.' 뭐 이런 류의 의사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가까스로 그의 말 끝에 붙은 'Bye, bye'를 알아듣고 똑같이 '바이바이'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내 자리를 비운 채 다섯 명의 승객을 태운 노란 차가 내 앞에서 제대로 정차했을 때에야 겨우 해소된다. 휴~ 오늘도 무사히 차를 탔구나. 가끔 전화교환원이 '가오다오우, 이거런, 하오(好)'라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그럼 나도 그동안 갈고닦은 '씨에씨에(謝謝)'를 최대한 성의 있게 발음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거런(一個人), 이웨이(一位), 이베이(一杯)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이거런' 대신 '이웨이'를 사용해서 나를 당황시켰다. 얼핏 들으면 'way'로 들려서(사실은 한어병음으로 wei)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뭐 다른 길로 가라는 건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나한테 갑자기 영어를 사용해 뭔가를 설명하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중국어에서 一의 발음이 '이(yi)'라서 안 그래도 이게 '하나'인지 '둘'인지 헷갈리는 마당에 양사(量詞)가 바뀌니 내가 또 뭔가를 잘못했는지 소심해졌다. 나중에 중국어 선생님한테 물으니 이건 아마도 '좌석' 정도의 의미인 거 같다. 내가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한 자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고, 식당에서도 몇 명 왔다고 물어봤을 때 '세 사람이다'라고 답하면 '세 자리'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양명산에서 택시를 기다릴 때 택시 기사가 이웨이(一位), 량웨이(两位)라고 말하며 '몇 좌석이 남았으니 혹시 한 명이거나 두 명이면 와서 타시오..'의 뜻으로 '웨이'를 말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수업을 더 들어보니 웨이는 그냥 높임 표현인 것 같다. 고객은 높여야 하니까)한국어도 그렇지만, 중국어에도 양사가 매우 많은데, 솔직히 그 모든 양사의 한자의 뜻을 알고 있을 정도로 내 한자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고, 용례가 한국어와 동일하지도 않아서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한국어에서도 '꽃 한 송이', '꽃 한 다발' 이렇게 말하지 않고 '꽃 한 개'라고 말하면 꽃이 덜 예뻐지는 기분이니까.. 커피를 주문할 때에도 '이거 카페이' 대신에 '이베이 카페이'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어로 치환해 생각해 보자. '커피 한 개'보다는 '커피 한 잔'이 더 분위기 있어 보이니까. 외우자.. 양사. 이지비(一枝筆, 펜 한 자루), 이번슈(一本書, 책 한 권)...


덩이샤(等一下)


지난달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사실은 같은 경험의 중첩으로 인한 지혜 획득으로) 택시를 탈 때 약간의 눈치가 생겼다. 학교에 올라갈 때뿐만 아니라 내려갈 때에도 택시를 타야 하는데, 내려갈 때는 '이거런' 빼고 '가오다오우'만 말하면 되어 훨씬 쉽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택시정거장이 가장 먼저 나타나므로 나는 마지막에 타야 하거나 기사 옆 자리에 타야 한다. 총 여섯 명이 택시를 타려면(기사 포함 7명이 2-3-2 포메이션으로 택시를 탄다.) 기사 옆 한 자리가 가장 편한 자리이므로 내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자리는 보통 뒤에 사람을 다 태우고 두 번째 줄도 다 태우고 남은 마지막 좌석이 되겠다. 보통은 수업을 마치고 합승택시 타는 곳에 가면 학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서 심하면 30분까지 기다릴 때도 있는데 종강일에는 시험이 조금 일찍 끝나서 평소보다 일찍 나갔더니 줄도 없고 택시 안에 이미 두 사람이 탄 채로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가 의자를 접어서 나를 택시의 세 번째 열에 태우려고 해서 다급히 '가오다오우'를 외쳤고, 또 기사가 길게 뭐라고 말했으나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가까스로 '덩이샤(기다려라)'를 알아듣고 교양있는 표정으로 '하오(좋다)'라고 말하고 나보다 먼저 택시에 탑승할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는데, 뭔가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고(대화라기보다는 그가 말했고 나는 끄덕임), 내가 중국어를 못 하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택시를 탄 것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택시 요금도 중간열에 탄 승객이 뒷열에 탄 승객의 돈을 기사에게 전달해 줘야 하는데, 이날은 한 학기 동안의 택시 탑승으로 익힌 표현인 '호미엔더(後面的, 뒤의)'을 우아하게 말하며 뒷자리 승객의 돈을 기사에게 건네주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집에 가서 일기를 써야지 하고 뿌듯해있던 찰나.. 기사가 말을 걸었다. 추측으로는 뭔가 여기가 아니고 저기에서 내리는 게 어떻겠냐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결국 난 학생들이 잔뜩 탄 택시 안에서 워부훼이쇼종원(我不會說中文, 저는 중국어를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고 기사는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아.. 너 중국어 못 하는구나) '가오다오우, 오케이'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그가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듣고 괜찮다(可以), 좋다, 알겠다(好的, 我明白)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게 될 날을 꿈꾸며... 덩이샤(等一下, 기다려)... 비에찐장(別緊張, 서두르지 마)... 만만라이(慢慢來, 천천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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