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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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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피 Dec 13. 2020

장르물에 진심인 MBC. 장르 드라마, 어디까지 가봤니

W부터 카이로스까지.

잘 만든 장르물이란 무엇일까. 빠른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 어려운 스토리를 어렵지 않게 풀어주는 연출, 단순한 재미 이상의 작품의 철학과 주제. 나는 이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MBC는 올 한 해 판타지, 추리 등 다수의 장르물을 방영했다. 작품의 분위기는 갈수록 무거워졌고 퀄리티 또한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카이로스’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로맨스’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 장르물의 여정은 어디서부터 였을까.           

MBC 장르물에는 태초에 ‘W’가 있었다. 



누군가 로맨스 장르물의 레전드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W’를 보게 하라. ‘W’는 고3이었던 필자를 드덕의 세계에 입문하게 했던 드라마다. 올해 초 라섹 수술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소리만으로 재탕 삼탕 했던 드라마였다. 그 정도로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W’는 2016년 서울, 같은 공간의 다른 차원,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 즉, 모니터로만 보던 웹툰을 교차하며 벌어지는 로맨틱 서스펜스 멜로드라마로, 각기 분리돼있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건들을 담은 드라마다. 엄밀히 말하자면 로맨스 드라마였지만 웹툰과 현실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사건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발로 뛰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장르물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짜임새 있었다. 웹툰 속에서 현실로 걸어 나가는 연출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기가 막혔다. 



2016년 ‘W’까지만 해도 장르물이기는 하지만 로맨스가 주류였다.  



         

그런데 2020년,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 장르물에서 로맨스물이 점점 빠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로맨스가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로맨스가 딱 2% 들어간 2020년 상반기 방영한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이하 365)’는 드덕들 사이에서 뒤늦게 입소문을 탄 드라마였다. 


완벽한 인생을 꿈꾸며 1년 전으로 타임 슬립했으나, 더 알 수 없는 운명에 갇혀 버린 뒤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미스터리 생존 게임을 다룬 드라마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인 만큼 매 회차 스토리가 몰아쳤고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몰입감이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드라마였다. 연출도 훌륭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시청자로서 자칫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연출이 좋아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사고가 났던 미래의 자신을 회상하는 1년 전의 신가현(남지현 역)


분위기는 대체로 무거웠지만 이준혁과 남지현의 약간의 로맨스적 모먼트가 중간중간 있어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구간들이 있었다. 이것이 로맨스의 힘이다. 축축 처지는 분위기를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는, 로맨스 자체가 불가능한 장르물 드라마가 현재 방영 중이다. 바로 카이로스다. 카이로스는 ‘365’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주제로 하는 판타지 장르물 드라마이다. 



카이로스는 보는 내내 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내용 자체가 유괴된 어린 딸을 되찾아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 역)과 잃어버린 엄마를 구해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 역)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가로질러" 고군분투하는 타임 크로싱 스릴러다. 딸의 유괴와 엄마의 실종을 해결해야 하는 주인공 둘은 로맨스가 가미될 일 없는 관계이다. 사실 로맨스가 없으니 웃을 일이 없다. 보는 내내 미간 찌푸리고 집중해야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각 잡고 본다는 말이 적합하며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기엔 다소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드는 연출이 훌륭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는 아니다. 화면 교차, 영상의 색감, 뒤에 깔리는 배경음악까지 활용한 연출은 최선을 다해 상황을 쉽게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노력과 배려다. 비록 로맨스가 없고 하루의 끝에 보기엔 다소 분위기가 어둡지만 절대 재미가 없거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물 흐르듯 넘어가는 연출과 각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중적인 면들이 이 드라마의 관전 요소다.      


하지만 이렇게 무거운, 로맨스 요소가 없는 장르물을 방영하기로 선택했다면 시청률 고전은 어쩔 수 없다. 장르물은 몰입도를 깨지 않고 정주행하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 대다수다. 카이로스처럼 어둡고 몰입도 높은 드라마가 이토록 결방이 잦다면 시청자들이 하차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남은 회차에서는 부디 결방이 없길 바란다.) 하지만 현재 ‘카이로스’는 점차 입소문을 타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잘 만든 드라마는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어있다. 만약 방영 중에 빛을 보지 못한다면 종영 후에라도 회자되는 드라마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MBC 장르물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봤다. 만약 당신이 어두운 분위기의 장르물이 익숙하지 않다면! 달달한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판타지 드라마 ‘W’부터 정주행을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1화를 끝내는 순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화를 재생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춥고 쌀쌀한, 건강까지 조심해야 하는 이번 12월 한 달은 MBC 장르물 정주행을 달리면서 알차게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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