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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Dec 05. 2021

[커피 메이트]

중년의  금지된 사랑을 말하다

흔히 육체적 관계없이 깊은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친구 사이를 '소울 메이트'라고 한다. 누가 봐도 이것에 착안한 신조어로 '커피 메이트'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두 남녀는 자신들의 관계를 커피메이트라고 규정한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사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카페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더 이상 관계가 진척되는 것을 막고 피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커피 메이트가 대단한 세기말적 ,  정신적 교감을 이룬 소울 메이트인 것 같으나 그것은 단지 둘의 육체적 관계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 같은 것이고 둘 사이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의 염증을 느낀 두 남녀(솔로와 기혼)가 세상의 열린 눈과 비난을 피해 적당한 유희를 즐기기엔 안성맟춤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남자는 그것으로 인해 둘 사이를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었고 자칫 자신에게 쏟아질지 모를 책임에 대한 핑곗거리를 구축해 놓은 셈이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것은 여자만의 몫이었다. 카페 안에서 만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해의 심각한 수준의 마음의 상처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만의 몫이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듯, 스스로 생살을 찟으며 자해한 여자를 보고 난 뒤, 지나가는 행인에게 흠칫 두들겨 맞은  후의 여자의 동태를 살핀다. 자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고 가슴 아파하는 여자를 보고 희열을 느꼈을까? 누가 봐도 한쪽으로 기운 답답한 상황이다.

남자는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과거 연애담을 이야기하며, 그녀가 그 동일선상에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건 '신사도'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의 괴물이 또 튀어나올까 봐 둘 사이를 그 공간 그 안으로만 한정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자들의 솔직한 심경고백인지,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준비된 멘트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 확실한 것은 이미 자라 버린 감정의 싹에 대하는 남녀의 온도차, 시선차이가 느껴질 뿐이다.


남자 주인공이 자신에게 신사도를 요구하듯이 필자는 남자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한다. 그것이 남자가 여자에 대한 진심을 확인시키는 유일한 방법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말, 언어유희, 이런 것들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약방 속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생각만큼 약효는 없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불륜을 어디로 규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주인공들은 육체적 관계가 없다면 외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여자는 육체적 관계없이도 마음을 주고 막을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자기 파멸에까지 이르는 결말에 이르렀다. 따라서 외간 남자와의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외도로 규정지을 수 있다.

작가는 서둘러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여자가 자신의 불행한 삶에 대항하여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과 상처 받은 과거와의 화해로 결말을 짓는다. 허영 덩어리인 그 간의 모습은 벗어던지고 사랑 없는 결혼 생은 청산해 버림은 물론 새롭게  삶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세상의 비난을 피하면서도 솔직한 대화 상대를 찾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 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의 시선에 취약하다.

심 파극 저럼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거나, 울고 짜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영화는 중년의 남녀의 심리 차이에 오는 안타까운 사랑을 말하고 있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 표현이 주인공들의 세심한 심리묘사를 돋보이게 한다. 더불어 공식석상에서는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없는 안타까운 진실을 솔직, 담백한 작가의 시선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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