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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n 01. 2023

영화와 불교 3_ <드롭아웃(2022)>

탐진치가 향하는 곳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의 한 장면,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핑크 드레스를 입은 마릴린 먼로가 고혹적인 자태로 노래를 부른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이 말이 맞는지 틀린 지는 차치하고,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중생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일까. 필자 생각에는 삼독三毒이 아닐까 한다.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癡를 줄여서 탐·진·치라고 한다. 탐욕은 지나친 욕심, 진에는 분노, 우치는 어리석음이다. 탐·진·치는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고 깨달음을 막기 때문에 세 가지 독, 즉 삼독三毒이라 부른다. 중생의 삶은 삼독으로 가득 차 있어 예부터 고통의 바다苦海라 하였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만든 삼독의 감옥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거대한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한때 90억 달러(약 12조 870억 원)의 가치를 가졌다고 평가받던 기업 ‘테라노스’의 대표이자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엘리자베스 홈즈가 바로 삼독으로 치달은 삶을 산 인물이다.



사진 1. <드롭아웃> 포스터






 <드롭아웃 The Dropout(2022)>은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 사건을 다룬 8부작 드라마로 2022년 훌루(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되었다. 테라노스는 2018년 폐업했지만 CEO(최고경영자)였던 엘리자베스 홈즈와 COO(최고운영책임자)였던 라메쉬 발와니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지 않아(1심 선고가 내려졌지만 둘 다 항소의 뜻을 밝혔다) 테라노스 사건은 완전히 끝을 맺지 못했다.  


 1984년 미국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홈즈는 2002년 대통령 장학생 자격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화학공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2004년 돌연 학교를 중퇴하고 회사를 차리게 된다. 그녀의 나이 19세였다.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엘리자베스의 오랜 꿈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그녀는 자신은 박사학위에는 관심이 없고 돈을 벌고 싶다고 아버지께 말했다고 한다. 9~10살 무렵에도 억만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니 엘리자베스의 진정한 목표는 돈이고,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 엘리자베스가 구상한 것은 팔 패치였다. 당시 투자자에게 보여준 자료에 의하면 이 패치의 이름은 테라패치(TeraPatch)로 패치 안에 미세 바늘이 있어 고통 없이 혈액을 채취할 수 있고, 내장된 마이크로칩 감지 시스템으로 바로 혈액을 분석하여 결과를 환자의 주치의에게 무선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런 패치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혈액 검사 기계와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제품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름과 규모, 투자금도 달라졌다. 초창기 회사 이름은 리얼타임큐어(Real-Time Cures)였지만 곧 테라노스(Theranos)로 바꾸었다. 테라노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조합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여러 벤처 캐피털에서 투자를 받아 2004년 말 6백만 달러를 확보하였고, 캘리포니아의 산업지대에 작은 사무실도 얻었으며, 스탠퍼드에서 같이 공부했던 옛 동료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을 끌어들였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투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17년 말까지 9억 달러가 넘는 돈을 유치했고, 총격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우범지대에 자리했던 회사는 대기업들이 즐비한 실리콘밸리 중심부로 이전하였으며, 엘리자베스의 비전에 공감한 많은 이들이 입사하여 직원은 2015년 800여 명에 이르렀다. 



사진 2. 2015년 테라노바 랩에서 포즈를 취한 엘리자베스 홈즈




 엘리자베스는 환자의 손가락을 찔러 뽑은 단 한 방울의 피로 250여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주사기로 정맥에서 피를 뽑는 혈액 검사는 아프기도 하지만(주사공포증은 어른에게도 꽤 흔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비싼 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극소량의 피로 여러 질병을 검사할 수 있고 가격까지 저렴하다고 하니 테라노스의 기술은 미국을 넘어 의학계를 뒤흔들 세기의 발명이 될 전망이었다.  


 스티브 잡스를 열렬히 숭배하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의학계의 스티브 잡스가 되기를 바랐다.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 시스템을 ‘보건계의 아이팟’이라고 불렀으며, 개발자들에게 자사의 혈액 검사 기계인 ‘에디슨’을 작게 그리고 단순하게 만들라고 닦달했다. 또한 애플의 직원을 영입하고, 애플의 광고를 맡았던 광고 대행사에 홍보를 의뢰했다. 


 엘리자베스의 외모도 변했다. 촌스럽고 캐주얼한 옷은 벗어던지고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터틀넥과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부스스한 갈색머리는 금발로 염색해 쪽머리처럼 뒤로 둥글게 묶었다. 입술에는 빨간 립스틱을 발라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하얀 피부를 강조했으며,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엘리자베스의 가짜 목소리와 진짜 목소리를 비교한 영상이 많다. 사기극이 드러난 지금 들어보면 변조된 목소리가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CEO의 목소리가 중저음일 경우 고음일 때보다 더 큰 기업에서 일하며, 연봉도 더 많이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니 모든 게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드롭아웃>에서 엘리자베스 홈즈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영화 <맘마미아(2008)>의 여주인공)는 이런 외적 변화와 표정(엘리자베스는 눈을 잘 깜박이지 않는 걸로도 유명했다), 버릇, 불안한 심리를 잘 표현하였다. 



사진 3.  각종 미디어에 대서특필되었던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




 젊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성 CEO와 회사가 지녔다는 획기적인 기술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엘리자베스가 미디어에 노출될 때마다 투자금은 더 많아졌으며, 이와 함께 인지도도 높아지고 인맥도 넓어졌다. 헨리 키신저(닉슨 행정부 국무장관), 조지 슐츠(레이건 행정부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트럼프 행정부 국방장관) 같은 정계 인사들이 테라노스 이사회에 들어왔으며, 루퍼드 머독 등 쟁쟁한 재계 인사들에게서 투자를 받았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당시 부통령)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엘리자베스는 스티브 잡스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테라노스의 기술이 진짜 있었다면 말이다. 


 회사를 창업한 2004년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존 캐리루가 사기를 폭로한 2015년까지 테라노스는 그 기술을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신 지멘스(Siemens)의 혈액 검사기를 대량 구매해서 검사를 진행했으며(기계를 해킹했다고 한다), 혈액의 양이 부족해 희석시키다 보니 검사 결과도 부정확했다. 의료기계임에도 불구하고 FDA검사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와 약국 체인 월그린 매장에 기계를 배치해 혈액 검사를 진행했다. 부정확한 검사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테라노스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엘리자베스와 라메시 발와니(둘은 연인 관계였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실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들은 기밀유지에 광적으로 집착했는데 진짜 기밀은 테라노스의 신기술이 아니라 그런 기술이 없다는 사실이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들은 모욕을 당하거나 그 자리에서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테라노스가 고용한 일류 변호사와 로펌은 협박과 함께 고소를 남발하는데 주력했고 대부분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미행을 하거나 감시를 해 상당한 압박감을 주기도 하였다. 


사진 4. 엘리자베스 홈즈와 라메시 발와니



 <드롭아웃>의 초반이 엘리자베스가 회사를 성장시켜 주류에 편입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두 사람이 직원들을 통제하고, 투자자를 속이고, 멋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기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기극을 폭로한 존 캐리루는 <배드 블러드: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책을 냈는데 <드롭아웃>과 함께 보면 더 명확하게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부에 대한 탐욕, 다른 의견을 말하는 이들에 대한 폭발적인 분노, 영원히 진실을 감출 수 있을 거라 믿는 어리석음. 이 삼독의 결과는 결국 파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징역 11년 3개월, 라메시 발와니는 징역 12년 11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모르겠습니다’와 함께 거짓말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책임을 전가하였다.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뉴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9년 에반스 호텔 그룹 상속자인 빌리 에반스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것이다. 일개 필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삼독의 브레이크이자 해독제를 설하셨다. 바로 계戒·정定·혜慧이다. 계율은 욕망을 씻어내 바른 삶을 살게 하고, 선정은 분노를 다스려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 지혜는 어리석음을 걷어내어 진리를 보게 한다. 정말 간단하지만 심오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세 글자가 계戒·정定·혜慧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결국 계戒·정定·혜慧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이미 삼독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니 불자라면 ‘계戒·정定·혜慧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답을 고민하다 보면 중생의 가장 친한 친구인 삼독과 이별하고 참다운 행복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진 5. 11년형을 선고받은 엘리자베스 홈즈가 브라이언 교도소에 자진 출두해 수감되었다





(2023년 3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월간 봉은판전> 게재)







참고자료

1.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배드블러드,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와이즈베리




사진 및 그림 출처

1. THE MOVIE DB

https://www.themoviedb.org/tv/122066-the-dropout/images/posters?language=ko-KR

2. San Francisco Examiner,   'They still live in the shadow of Theranos’ Elizabeth Holmes' 2021년 8월 24일

https://www.sfexaminer.com/archives/they-still-live-in-the-shadow-of-theranos-elizabeth-holmes/article_fae9122e-6c80-5864-a71d-771eb80a651c.html

3. The New York Times, 'How Elizabeth Holmes Soured the Media on Silicon Valley' 2021년 11월 23일

https://www.nytimes.com/2021/11/18/technology/elizabeth-holmes-theranos-trial.html

4. The Wall Street journal, 'U.S. Files Criminal Charges Against Theranos’s Elizabeth Holmes, Ramesh Balwani' 2018년 6월 15일

https://www.wsj.com/articles/u-s-files-criminal-charges-against-theranoss-elizabeth-holmes-ramesh-balwani-1529096005

5. ABC News,  'Elizabeth Holmes enters Texas prison to begin 11-year sentence for notorious Theranos blood-testing hoax' 2023년 5월 31일

https://www.abc.net.au/news/2023-05-31/theranos-elizabeth-holmes-begins-prison-sentence/10241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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