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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pr 27. 2023

영화와 불교 2_ <예스맨(2008)>

즐거운 수행을 위해



 새해였던 2023년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조금씩 헌해가 되고 있다. 1월 1일, 마음속에 또는 다이어리에 꾹꾹 새겨 넣었던 그 결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월은 굳건했던 정초의 마음을 꺼내어 점검할 시기이다. 불자라면 ‘나는 올해 이러이러한 수행을 하겠다.’고 다짐했을 가능성이 크기에 2월의 주제는 수행으로 잡았다.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 말하기도 하고, ‘실천의 종교’ 혹은 ‘깨달음의 종교’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 불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신 깨달음을 향해 수행해 나간다. 주제를 정한 직후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수행이란 무엇일까. 나는 수행을 한 적이 있을까. 수행은 너무나 흔하게 보고, 듣고, 말하는 단어여서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새삼스럽기도 하다. 익숙한 대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때로 낯설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수행을 뜻을 살펴보자. 《간경수행입문》에서는 수행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수행修行의 산스크리트어는 바와나bhāvanā이다. 이 말은 ‘되어 가는 것’ ‘되게 하는 것’ ‘되어짐’이란 뜻이다. 수행은 내가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것, 계발되는 것이다. (중략) 내가 바뀌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내 ‘마음’만 닦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이다. 물론 마음을 닦는 행위를 통해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닦음’을 통해서 중생에서 부처로 ‘되어가는 것’이다.'

      


사진 1. 클로이 violetno@naver.com(출처: 불교신문)



 우리는 깨닫기 위해서 즉, 부처가 되려고 수행한다.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수행이다. 일반적인 수행법으로는 절 수행, 염불 수행, 진언·다라니 수행, 간경(경전을 읽음) 수행, 사경(경전을 베껴 씀) 수행, 사불(불상을 그림) 수행, 선 수행(간화선, 위빠사나 등)이 있다. 얼마 전 《스님과의 브런치》라는 책을 읽었는데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저자는 사찰요리를 배우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조금씩 변한다. 이렇게 요리 역시 수행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수행법이 있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수행하면 된다.



 수행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중 언제가 되었든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해야 한다. 단 5분이라도 매일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행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즐거움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는 수행을 가로막는 흥밋거리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왜 하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확신을 가져야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다. 아무 고민 없이 수행을 하게 되면 행위 자체에만 몰두하는,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내가 수행을 한다’는 사실에 도취될 수도 있다. 영화 <예스맨>은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진 2 (예스맨 포스터).



 <예스맨>은 2008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로 개봉 당시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주인공이 한국어를 배우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NO만 외치던 주인공이 YES를 남발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언뜻 수행과 비슷해 보인다.



 주인공 칼은 이혼한 이후 매사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친구들과의 만남도 회피하고 따분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싫어, 안 해’를 입에 달고 살던 그는 어느 날 꿈을 꾼다. 꿈속에서 자신은 소파에 누운 채 죽어버렸고, 친구들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평소랑 똑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영 마음이 꺼림직한 칼의 눈에 뭔가 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가 건넨 ‘YES 세미나’ 팸플릿이다. 칼은 그날 저녁 세미나에 참석한다. 세미나는 사이비 종교 모임 같은 분위기인데 칼은 처음 왔다는 이유로 주최자에게 주목을 받게 되고 얼떨결에 ‘앞으로 모든 일에 무조건 YES만 하기’로 서약한다. 만약 서약을 깨면 삶이 엉망이 된다는 주의사항(?)도 듣게 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때만 해도 칼은 서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지만 친구의 강요로 노숙자를 태워주면서 본격적인 예스맨의 삶을 살게 된다. 

 노숙자와의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져 연애도 하게 되고,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된다. 패싸움도 해보고, 이란 여성과 소개팅도 하고, 기타, 경비행기 조정, 한국어(한국인도 알아듣기 힘든 한국어가 나온다) 등등을 배운다. 칼은 은행에서 대출 담당자로 일하는데 거부만 하던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꿔 무조건 대출을 승인해준다. 그 결과 칼은 임원의 자리에 오른다(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다). 물론 그도 어쩔 수 없이 NO를 외쳤던 적이 있으나 그럴 때마다 나쁜 일이 벌어지다보니 YES에 대한 믿음은 집착으로 변질되고, YES 행진은 끝없이 이어진다.



 YES를 외침으로서 무미건조했던 그의 삶은 흥미진진해진다. 수많은 경험과 만남들로 칼의 일상은 이제 너무 바쁘고 자극적이다. 칼은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칼 역시 자신이 행복한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YES를 외치고 약속한 일들을 의무처럼 해치워 나간다. 이유는 단 하나, YES를 하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행을 할 때는 부처님의 법을 믿고, 정신을 집중해 온 마음과 힘을 쏟아야한다. 칼 역시 믿음을 가지고 전심전력을 다해 서약을 지키기 때문에 마치 수행처럼 보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회피하지 않는 모습은 숭고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목적 없는 수행은 칼의 서약처럼 기계적인 행동에 그칠 위험이 크다. 이런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긍정적인 변화로 보일 수 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전과 달리 부지런해보이고, 진중해보이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만족도 크다. 하지만 사색과 성찰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다. 이만큼 많은 경전을 읽고, 사경을 하고, 염불을 하고, 절을 했다는 숫자들만 남는다. 숫자는 숫자일 뿐, 아무리 많은 숫자가 모여도 ‘부처로 되어가는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


 수행은 내가 뿌듯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수행은 부처님의 말씀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숫자가 아닌 실천으로 증명되어야한다. 때문에 수행을 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얼마만큼 깨달음에 다가서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티끌만큼의 차이라 할지라도 오늘의 삼독三毒(탐욕, 화, 어리석음)을 어제보다 더 내려놓았는지, 싫고 좋다는 분별을 멈추었는지, 자비의 마음을 냈는지 세심히 들여다 보아야한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사진 3. (영화 <영혼의 순례길> 속 한 장면)



 최근 읽었던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에 재미있는 일화가 실려 있었다. 책의 저자인 성태용 교수가 절 법회에서 강의를 하다가 “부처님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하고 물었더니 손 든 사람이 얼마 없었다고 한다. 불교는 부처가 되자는 종교이고, 법회가 끝나면 서로서로 ‘성불하세요.’를 말하는데도 부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손을 들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을 해보았다. 나라면 손을 들었을까.



 필자는 태교로 사경을 했었다. 《숫타니파타》, 《금강경》, 《천수경》 등을 사경하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발원을 적었다. 경전의 의미를 새기기보다 사경의 공덕이 아이에게 회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나는 변하지 않고, 아이를 위한 복만 구했으니 이를 수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했던 숱한 기도 중에서도 장차 부처가 되겠노라는 기도는 거의 없었다. 절집을 드나들면서도 깨달음은 저 멀리 밀어놓고 지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    



 영화 후반, 세미나 주최자에게서 YES 서약의 진정한 의미를 들은 칼은 더 이상 YES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YES로 맺어진 인연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거나 겁내지 않는다. 칼은 진정으로 변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온몸으로 타는 인라인’을 장착하고 산길을 질주하는 칼을 보여주는데 그는 더없이 즐거워 보인다. 앞으로도 칼은 가끔 NO를 외치긴 하겠지만 그래도 YES를 더 많이 외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칼처럼 즐겁게 수행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중에 발제(밧디야)라는 인물이 있다. 발제는 석가족으로 부처님의 사촌이며 석가족의 왕이었다. 그는 왕위를 버리고 아나율과 함께 출가하였다. 발제는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다가 ‘참으로 즐겁구나.’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 말을 들은 몇몇 승려가 발제는 과거 왕이었을 때 누렸던 쾌락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부처님께 일러바쳤다. 부처님께서 발제를 불러 어찌된 일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왕이었을 때는 지위를 잃을까, 죽임을 당할까 항상 두렵고 괴로웠습니다. 출가하여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니 아무 두려움이 없고 평온하여 즐겁다고 한 것입니다.”   

 


 발제의 말대로 수행은 즐겁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지혜가 샘솟고 두려움이 없어지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변화된 나는 이웃에 자비를 베풀어 세상을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수행은 나와 세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요, 선업을 쌓는 길이다. 그러니 즐거이 수행해 나가자.



사진 4. 오채현 작품




(2023년 2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월간 봉은판전> 게재)




사진 및 그림 출처

1. 불교신문, 김선우 연재소설 '세개의 달'2부 <14> “부처가 되어라…부처의 행위로 세상을 장엄하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627

2. 위키피디아, 예스맨(영화)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A%A4%EB%A7%A8_%28%EC%98%81%ED%99%94%29

3. 씨네21, <영혼의 순례길> "순례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야"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0270

4. 서울아트가이드, 변종필 칼럼 <오채현 조각가의 ‘원시성과 해학이 담긴 민화적 미감’>

http://www.daljin.com/column/1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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