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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Sep 11. 2022

이상한 나라의 김한뭉치

매일 기록하는 짧은 글

안타깝게도 내가 요즘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 오늘 뭐입지’. ‘ 이렇게 입으면 안되지라는 말을 출근 둘째날에 들어버린 후로는 안그럴려고 해도  생각이 떠나질 않아. 그럼 옷장을  뒤지는 거야. 아무리봐도 단체티랑 핫팬츠, 짧은 치마, 나시 밖에 없는 옷장을. ‘, 이건 너무 짧나’, ‘, 이건 슬로건이 너무 급진적인가 따위 고민들로 아침을 채우면서 굴욕감에 젖어들지. 그날 입었던  중에 윗옷이 문젠지 아래옷이 문젠지 말해줬다면 차라리 쉽지 않았을까. 싸우고 덤빌래도 내편이 한두명은 있을  얘기지, 입사 7일차 신입은 일단 꼬리를 내리고 동태를 살피는 거야. 날카로운 발톱은 슬며시 숨겨두고. 그러면서 정신승리를 시도하는 거지. ‘아침에 일어나서 신나게 일할 생각 말고 오늘 뭐입지 따위의 고민을 하게 한다면, 그게 누구 손핼까, 날까? 널까?’ 그런 류의 정신승리. 근데, 결국엔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 손해보는  같단 말이지.


새로 이직한 곳은 원래 직장이 있던 무악재에서 버스로 겨우 15분 걸리는 곳. 15분 차이가 무색하게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거 있지. 버스에서 내려 빌딩숲 가운데 서면 눈이 휘둥그레져. 도시에 온 시골쥐 같은 심정으로 길을 걷다 보면 출근시간 광화문의 공기가 너무 낯설어. 분명 기자회견이며, 시위며 늘상 누비던 곳인데, 그 시간의 공기는 또 너무도 다른 거야. 온갖 조형물과 전광판이 휘황찬란 화려한 색을 뽐내지만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너무도 무채색인걸. 어쩌면 이것들이 사람들에게서 색깔을 빼앗아 버린건 아닐까 하고 괜히 한번 쏘아보곤해.


또 이상한 건 점심시간이야. 무악재에선 육천원 짜리 짜장면이 이 곳에선 만원이 되고, 한끼에 만원을 지출하기가 무서운 나는 김밥집을 기웃거려. 김밥은 채식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또 김밥집에 가서 이거 빼주세요 저거 빼주세요 하기에 직원들은 너무 바빠보인다구. 사람들 사이에 섞여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플라스틱 컵에 든 오트라떼를 들고 어색하게 웃는 나도 너무 싫고. 결국 이 세계의 내가 너무 맘에 안드는 거야. 이상한 세계의 이상한 규칙에 낑겨든 나. 거울도 보기 싫을만큼 진짜 별로야.


이상한 나라의 김한뭉치. 이 이상한 세계와 끝끝내 불화하길 바라. 무채색이 되지 않고 고유의 색을 지켜내길 바라. 어느날 내가 뇌에 긴장풀고 이 세계의 언어를 흉내내며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데려가서 혼구녕을 내줘 친구들아. 달달한 비건 디저트는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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