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으면서 배운 걸 정반대의 방식으로 나누기
피스모모에 와서 하는 많은 일 중에, 당연히 익숙한 일도, 새로운 일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일로서' 한다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일은 '의외로' 교육이다. 이게 왜 의외냐면, 나는 공동체교육을 지향하는 공부방에서 유년을 보냈고, 청년기에는 공부방 자원교사로 활동했다. 그 활동을 토대 삼아 석사 세부전공도 교육사회학을 했고, 활동가가 되고 나서는 강단에 서거나 캠페인 트레이너로 교육활동에 나서는 게 꽤나 빈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그야말로 내 삶의 토대이자, 수단인데, 모모에서의 평화교육은 그저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져서, 이걸 내가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모의 평화교육진행자로의 데뷔는 아직이다. 코디네이터인 가지에 따르면, 이제 막 입문한 진행자들은 비교적 쉬운 교육에 배치를 하고, 그래서 내가 준비하게 된 교육은 이제 막 입학하거나 새 학기를 시작한 학생 분들과 함께하는 교육이다. 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공간에서 안전하게 관계 맺을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 내가 맡게 될 교육의 가장 큰 목표다. 새 학기, 새 학년, 새 학급이 주는 극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게 관건일 거라고, 잠깐의 준비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무기거래나 인권, 평화 같은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캠페인 빌딩처럼 머리 쥐어뜯으며 토론해야 하는 주제도 아닌데, 나는 이게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환대는 모모 교육에서 제일 첫 번째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방법론과 철학이다. 짝을 지어서 이야기하고, 경청하고, 질문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이 교육을 접했을 때,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아니, 이걸 왜 프로그램으로 해야 돼?'였다. 사람이 처음 만나면 밝게 인사하고, 이름을 묻고, 스몰토크든, 빅토크든 나누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사람이 말하면 (더군다나 그게 첫 만남이라면) 잘 듣고 반응하고, 다시 질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니, 그 당연한 걸 왜 이렇게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서 에너지를 쓰고 자원을 쓰는 건가.
그걸 굳이 프로그램으로까지 만들어서 하는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가을, 모모의 동료활동가가 진행하는 대학교 수업 워크숍에 보조진행자 겸 참관인으로 따라갔다. 책상을 치우고 의자로 커다란 원을 만들어 모두가 마주 보는 셋팅을 만들었다. 강의실에 들어선 참여자분이 온몸으로 당황스러움을 표현했다. 둘씩 짝을 지어 서로를 소개하고, 오늘의 상태가 어떤지 가볍게 묻는 것으로 첫 활동이 시작됐다. 몇 달 동안 한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들은 분들인데도,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모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들 이렇게 괴로워하시는 걸까. 이 정도의 긴장도 풀지 못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고 타인의 생각을 들으며 대화하고 토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겠다 싶었다.
20대 초반까지, 특기가 뭐냐고 묻는 란에 나는 늘 '인사 잘하기'라고 썼다. 관심 있는 건 많지만 잘하는 게 딱히 없어서기도 했고, 정말로 인사 잘하기가 내 특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동네 사람들을 알든 모르든 인사를 잘했고, 그러다 보니 인사 잘하는 나를 예쁘게 여기는 어른들로부터 간식이나 칭찬 같은 떡고물이 종종 떨어졌다. 새 학기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색하기야 서로 마찬가지일 거고, 새 친구가 절박한 그 시기에 누군가 말 건다면 누구라도 너무 반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먼저 말을 걸었다. "친구야 안녕?" 하면서. 대학교 때는 그런 적극적인 인사 때문에 '쟤 담배필 것 같아'하는 오해도 받았긴 했지만 (그 친구랑은 대학 내내 짝꿍이었다), 어쨌든 반갑게 건네는 인사에 냉담한 반응을 한 사람은 내 기억으론 없다. 유학을 갔을 때나 긴 여행을 했을 때도, 그 인사 스킬 덕분에 외롭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거절의 경험이 없냐. 그건 절.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내가 사귀던 남자친구를 좋아한 같은 모둠 여자애가 나서서 나를 왕따 시킨 탓에 한 달 동안 학교를 안 갔다. 중학생 때는 내 파마머리가 맘에 안 든다고 대놓고 무시하던 남자애들 그룹이 있었고, 시골에 있던 대안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는 서울깍쟁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그래도 '인사 잘하기' 스킬은 효과가 톡톡히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하거나, 쌤들과 끈끈한 관계를 쌓게 했다. 누가 아무리 날 미워해도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 한두 명은 확보하게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사가 세상 젤 쉬웠고, 유용했다.
태어나자마자 인사 잘하기가 특기였던 건 아니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지역운동을 했다. 골목골목마다 엄마의 동료들이 살았고, 엄마가 돌보는 어린이들 (나에겐 친구들)이 있었다. 엄마와 길을 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던 어느 날은 엄마와 길을 걷다 동네 어르신을 만났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부끄러운 거다. 어르신이 인사를 건네시는데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몸을 배배 꼬며 엄마 뒤로 몸을 숨겼다. 엄마가 몇 번이고 '인사해야지'라고 말했지만, 결국 인사하기에 실패했다. 그 길로 엄마는 나를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서 엉덩이를 팡팡 때렸다. (나중에 나눈 얘기지만, 엄마는 내가 아빠가 없어서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됐다고 한다. 엄마는 여러 번,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렇게 호되게 엉덩이를 맞고서, 나는 엄마친구, 마을버스 아저씨, 빵집 언니 가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인사를 했다. 내가 자랑하고 싶던 내 특기는 사실 체벌의 결과물이었던 거다.
엉덩이를 맞으면서 체화한 인사하기 습관 덕분에, 나는 많은 곳에서 환대받고, 다른 이들을 환대했다. 그걸 왜 프로그램으로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폭력의 관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맞으면서 배운 그 환대의 스킬을 어떻게 하면 안전한 방식으로, 모두의 기여로서 공동체에 체화할 수 있을까. 모모의 평화교육진행자 데뷔가 너무너무 떨린다. 맞으면서 배운 걸 그 정반대의 방식으로 나누기, 잘해보고 싶다. 이렇게 써놓고 도망갈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