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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Apr 13. 2024

그녀가 사는 모양

왜 난 운동권으로 태어난걸까

어제는 인천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어쩌다 인천에 들를 때면 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데, 하나는 인천퀴어문화축제고, 하나는 엄마의 이십 대다. 이십대 초반의 엄마가 노조 조직하려 위장취업을 한 공단이 있던 도시가 인천이고, 엄마는 지금의 베프들(나에겐 이모들)도 인천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언젠가 깨숙이모랑 엄마랑 인천 시내를 걸었던 적이 있다. “야, 여기가 우리 아스팔트 깨서 던지고 그랬던 데냐? “하는 엄마랑 이모의 대화가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작고 약한 엄만데, 아스팔트를 깨서 던질 괴력은 어디에서 왔던 걸까.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혐오세력한테 손찌검을 당하고 깃발을 뺏겼던 인천퀴어문화축제의 기억을 연달아 소환한다. 엄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30년의 세월은 어떤 흐름을 만들고 어떤 숙제를 남겼나 생각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다. 어제 출장에 이어 밤늦은 시간에 유럽권 지역의 영 액티비스트들과 워크숍을 치르고, 그러느라 어제 미처 다하지 못한 업무들을 쳐내야 했다. 피곤해죽겠으면서도, 새벽부터 아침까지 아드레날린 솟게 하는 이 일이 도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약간 피곤해지기도 했다가, 체념하는 마음이 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또 엄마를 떠올려버리고 만 거다. 왜 난 운동권으로 태어난 걸까. 왜 하필 열여섯 살 때부터 이 일이 하고 싶었던 걸까, 맨날 입에 쌍욕을 달고 다니면서도 떠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맨날 어디 가면 반골 취급, 미운오리새끼취급을 받고, 가끔은 사무치게 외로워서 잠도 안 오게 만드는 이 일이 난 왜 이렇게 좋은 걸까. 가끔 그렇게 대책 없는 투정들이 올라올 때면, 늘 엄마가 생각난다. 결국 처음엔 그가 사는 모양을 닮고 싶었던 거였으니 말이다.


오늘은 엄마의 육십 번째 생일. 그가 보낸 육십 년 세월은 나에게 늘 많은 가르침을 준다. 변화라는 건 100년, 200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그래서 중요한 건 우리가 만드는 하루하루라는 것. 지향과 신념을 품었다면, 이 조건, 저 조건 따지지 않고, 그 순간부터 그냥 그렇게 살아버리는 것. 그런 삶 속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는 것. 약한 존재의 편이 되는 것이 아닌, 약한 이로 사는 것. 그러나 강력한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


엄마가 사는 삶의 모양이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아서, 그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막상 정신 차려보면, 가끔 너무 외로워서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가도, 엄마가 늘 말하는 100년, 200년을 생각하면, 숲이 만들어지는 느린 시간을 존중하게 된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면 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특권의 향기와 맛이 너무 달달해서 가끔씩 탐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그녀가 60년 세월 동안 지키고 키워낸 것들을 보면, 사랑과 존중, 그리고 우정 같은 것들은 돈과 권력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걸, 틀림없이 알게 된다.  그녀가 애정했던 봉천동 산동네와 작은 학교들에서 틔워낸 것들을 보면 말이다.


그녀가 던진 아스팔트 조각, 그녀가 사랑하는 문장들, 그녀가 숱한 날 동안 요리한 공부방 간식, 그녀가 골목길에 만든 작은 텃밭들. 그녀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세상 위에 산다. 그걸 떠올리면 외로울래도 외로울 수가 없다.


약한 존재로 사는 일은 오히려 더 많은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서 있는 위치를 계속해서 묻는 사회에서, 개뿔도 없는 주제에 쫄지 않고 살기란, 어쩌면 돈과 권력을 갖는 일보다 수백 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개뿔도 없으면서도, 쪼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엄마는 사실 가진 게 무진장 많은 사람이다. 나도 그의 그런 용기와 배짱을 닮고 싶다.


삶은 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가 내게 남긴 것들은 절대로 소중히 간직하자고, 외롭지도, 쫄지도 말자고 다짐해 본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그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된다면, 썩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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