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덥다. 재택근무를 하는데 아무리 에어컨을 켜도 집안이 식지를 않아서 짐을 싸들고 바로 앞 카페로 갔다. 혼자서 쓰는 에어컨 냉기가 아깝기도 했던 터였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전화를 걸었다. 더워서 카페로 피신했다고 하니, 아빠가 유튜브에서 봤다던 나름의 ‘귤팁*’을 알려줬다. 요즘은 설치가 간편한 암막 블라인드가 나오는데 그걸 설치하면 햇빛이 차단돼서 덥지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근데 그거 설치하면 너무 껌껌하잖아. 나는 햇빛 안보면 못살아”
“좀 깜깜하면 가만 있기 좋잖아? 너 어차피 일도 컴퓨터로 하잖아”
아빠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무슨 박쥐도 아니고 왜이렇게 깜깜한 걸 좋아해. 아직도 그렇게 깜깜하게 사는 건가.’
나는 아빠와 일곱살 때 헤어졌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면서 아빠랑도 헤어져 살게 된 것인데, 그들이 헤어지기 전의 아빠를 생각하면 아빠는 늘 동굴에 살았다. 우리 집은 산동네 중턱 골목 끝배기에 있는 3층 짜리 작은 빌라였다. 1층이었지만 세 면이 벽으로 둘러쌓인 탓에 현관과 붙어있는 작은 방 빼고는 반지하처럼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무렵 아빠는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누워서 잠만 잤다. 안그래도 햇빛이 없는 집안인데, 아빠가 종일 자는 안방은 작고 컴컴한 동굴 같았다.
아빠는 한 번 자면 깨는 법이 없었다. 벌건 대낮에도 깊은 밤처럼 잠을 잤고, 씻지도 먹지도 않은 채로 종일 잠을 잤다. 동생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라, 집에 딱히 같이 놀 상대가 없었는데, 종일 깊은 잠을 자는 아빠 옆에서 따분하게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태어날 때 쯤에는 수두를 앓았다. 온종일 열이 나서 정신은 아득하고, 몸에 난 수포가 가려운데 긁지를 못하니 고통스러웠다. 아직 수두를 앓지 않은 동생들에게 수두를 옮길까봐 다니던 애기방에는 갈 수가 없었다. 아빠가 마침 일을 쉬던 기간이라 엄마는 아픈 나를 아빠에게 맡겨두고 출근을 했다. 아빠는 아직 자고 있으니 엄마는 아빠 대신 나에게 당부를 했다.
“민영아, 밥 먹고 약 꼭 챙겨 먹어. 이따 아빠한테 점심 달라고 해.”
열이 한 차례 내려서 정신이 드니,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가 심심했다. 아빠는 일어날 기미가 없고, 엄마가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 준 만화영화 비디오를 오전 내내 봤다. 그러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 깼는데, 아빠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이제 슬슬 배가 고픈데, 아빠는 언제 일어날까. 한참을 기다려도 잠에서 깨지 않는 아빠를 보며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숨은 쉬는 걸까. 잠자는 아빠의 수박만한 배가 위아래로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며 살짝 안심하기도 했다. 더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아빠를 깨우기로 했다. 두 손으로 아빠의 몸통을 잡고 흔들었다.
“아빠, 일어나, 나 배고파.”
아빠는 깰 기미가 없다. 아빠가 성질을 낼지도 모르지만, 몇 번 더 아빠를 깨워보기로 한다. 잠자는 아빠의 커다란 몸통을 세게 여러번 흔들어보다가, 나는 결심한듯 내복 위에 겉옷을 챙겨입고 신발을 신었다. 엄마의 일터는 다섯 골목을 걸어올라가서 큰 길만 건너면 나온다. 엄마한테 가면 밥을 먹을 수 있겠지. 내복바람에 겨울 잠바만 입은 채 엄마의 일터에 도착한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나 배고파. 밥 줘. 엉엉. 아빠가 잠만 자. 으헝”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며칠 전이다. 박쥐에 대해 써야 할 글이 있어서 하루 종일 박쥐를 생각하다, 내내 동굴에 살던 아빠가 떠올랐던 것인데, 이제는 원망보다도, 아빠가 왜 그렇게 동굴에 살아야 했을까 궁금해진다. 아빠는 종일 잠을 자고서도 또 잘 수 있는 사람이었고, 세상의 빛에 나가면 약간 어색하게도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나들이라도 나간 날엔, 햇빛에 눈이 부신 건지 어쩐건지, 빛 속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아빠가 어느 날 혼자 죽어버릴까봐 걱정을 했다. 아빠는 멀리 울산에 사는데, 아빠가 죽었다고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해야 제일 빨리 울산에 도착할지 계산을 했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친척 식구들의 전화를 꼬박꼬박 받았다. 동굴에 살던 아빠 박쥐가 동굴을 떠나 혼자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른한 살이 되고서야, 그때의 아빠 박쥐를 다시 본다. 혼자 어둠 속에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어려서 수두 걸렸을 때, 그 때 왜 나 밥도 안주고 종일 잠만 잤어?”하고 물으니, 역시 아빠는 기억도 하지 못한다. 설마 아빠가 잠자느라 일곱살짜리 딸 밥도 안줬겠나며 반박한다. 나는 끈질기게 아빠가 얼마나 잠을 많이 잤는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아빠의 잠을 깨웠는지 설명했다. 아빠는 그제서야 아빠가 많이 잘못했다며, 내게 말했다.
“아빠가 그 때 수두 걸린 너보다도 기운이 없었나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더 이상 아빠에게 왜 그랬는지 묻지 못했다. 그리고 기운이 없었다는 게 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아빠를 더 아프게 채근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도망치고 싶었던 절망과 슬픔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밤을 늘려서라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내 심정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내 앙상한 상상력으로 과거의 아빠 박쥐를 조금씩 더듬어 본다. 밖에서 괜찮은 척, 나쁘지 않은 척 온 몸 다해 에너지를 써버리고 집에 돌아오면, 풀리지 않는 분노와 슬픔으로 방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밤들이 나에게도 무수히 많았으니 말이다.
수두 걸린 딸이 일터에 찾아와서 “엄마, 나 배고파”하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엄마가 아빠 박쥐와 진작 헤어져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아빠 박쥐에게도 이제는 짠한 마음이 든다. 빛 속으로 나갈 수 없었던 아빠 박쥐는 이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일곱 살, 어린 나에게 아빠 박쥐의 어두컴컴한 동굴은 역시나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빛으로 나올 수 없는 박쥐에게 왜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거냐며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서른 한 살의 나는 그 때의 아빠 박쥐와 화해하기로 한다. 그는 참새가 아니라 박쥐였으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저 동굴에서 나올 수 없었던 박쥐였을 뿐이니까.
*귤팁: ‘꿀팁’의 대체어. 벌을 착취해 만들어진 꿀을 상징어로 쓰는 것을 지양하며 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