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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Aug 11. 2024

진짜 공주의 시대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호르몬이 요동을 쳐서 그런지, 밤이 되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잠에 들 수 없고, 애써 잠에 들면 그마저도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지는 것이다. 다시 자려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잠은 오지 않고, 맨 정신으로 깨어있으려니 온갖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해서,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향한다. 어제 보다 잠든 드라마를 잠시 보다가, 이마저도 지겹고 괴로워서 금세 핸드폰을 꺼버린다.


누운 자리가 왜 이렇게 불편하고 괴로운 거지, 하고 다리 맡을 내려다보면 싱글침대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떡하니 누워있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고작 4.5 키로 남짓밖에 안 되는 고양이들인데, 열대야 중에 이들이 내뿜는 몸의 열기는 굉장한 것이었다. 너희가 가로로 뻗어서 자면 나는 어디서 자라는 거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킨다. 몸을 일으켜 소피와 무섬이의 뻔뻔스런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그저 녹아내리고 만다. 짜증을 내기엔 이 얼굴들이 너무 귀엽다. 그러면 나는 그냥 잠에 취한 고양이들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마는 것이다. 우렁찬 고양이들의 골골송을 들으며, 이 소리가 사람의 심장 건강에 좋다는, 언젠가 보았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찌라시를 떠올린다. 고양이들의 골골송이 내 아픈 곳도 치료해 줄 것만 같다.


외롭고 괴로운 밤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집 밖에서 두터운 가면을 쓴 채 한참 깔깔거리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잠을 자는 고양이들 곁에서 마루바닥에 쓰러진 채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깨는 날들이 길었다. 이제야 병명을 알게 된 내 병은 공주들의 병이라고도 불린다던데, 쉽게 피곤해지고, 예민해지고, 실제로 치료법도 푹 쉬는 것 밖에는 딱히 없어서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현실세계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일 벌이기가 취미고, 일 수습하기가 직업인데, ‘공주’들의 병에 걸렸다니 이렇게 곤란한 일이 또 있을까. 언젠가 직장에서 내가 오타를 너무 많이 내서, 오타공주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뭉치와 공주라는 단어,,, 너무 안 어울려요”라고 했던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깔깔 웃으며 왜 안 어울리냐고 반박하긴 헸지만, 솔직히 인정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만 앉아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나니까 말이다. 나가서 데모하고, 성명서 쓰고, 동료들과 회의를 하는 게 성격상 훨씬 편하고 신나는 걸. 가만히 머물며 쉬는 것, 의사가 처방이라고 내린 그 방법이 꼬박 시간 맞춰 호르몬제를 먹는 것보다 백 배는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주병이 있었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공주병을 세게 앓았다.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싶었고, 다른 친구들이 신는 것처럼 뾰족구두를 신고 싶었다. 여섯 살 때쯤이었나. 하루는 신던 운동화가 작아져 엄마와 새 운동화를 사러 갔다. 나는 신발가게에 들어간 순간부터 저 멀리 진열된 빨간 구두에 눈이 꽂혔다. 엄마는 운동화를 신어보라며 여러 차례 내게 권했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여러 켤레의 운동화가 내 발 밑에 부려졌다 거둬지고 나서, 나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그 빨간 구두를 신어보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사장님은 “이거 안 맞을 텐데”라고 난처해했지만, 나는 꼭 그 구두를 신어보고 싶었다.


구두는 역시나 나에게 너무나 컸다. 내 발보다 꼭 한 뼘이 커서 걸을 때마다 뒷굽이 달그락달그락 허공을 헤맸다. 그러나 나는 생전 처음으로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그것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반짝이는 빨간 구두를 신어본 황홀경에 취해, 구두가 내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상관이 없었다. 이제 구두를 벗어두고 운동화를 신어보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구두를 신은 채로 신발가게 밖으로 도망쳤다. 내가 신발을 신은 채 도망을 간 탓에, 엄마는 구두 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 발에 너무 큰 그 공주구두를, 주구장창 신고 다녔다. 너무 맨날 신고 다녀 내 발이 신발에 맞아지기도 전에 신발이 다 떨어질 정도로, 마르고 닳도록 구두를 신고 다녔다. 이웃에게 물려받은 티셔츠와 후줄근한 바지를 입고도, 그 신발만 신으면 내가 공주가 된 것 같았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스물세 살이 넘어 발레를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 공주병의 연장인지 모른다. 마른 몸에 딱 달라붙는 레오타드를 입고, 하늘하늘한 스커트에 핑크색 슈즈를 신으면, 발레는 개뿔 할 줄 몰라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신이 났다.


맞지도 않는 구두를 신고, 할 줄도 모르는 발레를 시작했을 때의 설렘은 비슷했다. 공주가 된 기분. 맞지 않는 옷을 입었지만, 느껴본 적 없는 귀한 기분이었다. 가난한 건 둘째 치고, 집안은 어두컴컴하고, 아빠는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엄마는 아픈 동생을 돌보느라 바빴다. 누군가 나를 귀히 여겨주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삐걱삐걱 나만의 공주놀이를 즐겼던 건, 어쩌면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의 말처럼 자라게 하는 것은 어둠의 계획이어서, 그 어두컴컴한 시간은 동생과 나만이 아니라, 아빠도 성장하게 했다. 아무도 나를 아껴주지 않는 것만 같던 어린 시절을 혼자만의 공주놀이로 버티는 동안, 아빠는 산에 다녔다. 아빠의 다리가 단단해지면서, 나는 아빠에게 성질도 내보고,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도 아빠가 죽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어릴 때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공주야”라는 말을, 서른이 넘어서야 아빠에게 처음 들어본 날, 새로 태어난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아빠의 “공주야”라는 말을 양분 삼아, 나는 존중받지 못하던 연애를 끝냈다. 나는 공준데, 공주처럼 대해주지 않는 애인 옆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맞지도 않는 빨간 구두를 신지 않아도, 발레복을 입은 내 모습이 이제 더 이상 깡마르지 않아도, 공주일 수 있을까. 맞지 않는 공주놀이에 익숙해진 마음이 쭈그러들 때마다 아빠가 “공주야”라고 불러주던 날을 떠올린다. 잊지 말자. 나는 공주다. 다 해진 낡은 운동화를 신었어도,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화장 따윈 할 시간이 없었어도, 방바닥에 널브러져 저녁시간을 보낸다 한들, 내가 공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공주야”라는 아빠의 한 마디에 이렇게 신분이 급상승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호르몬을 망가뜨려 조금만 일해도 지치게 하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는 이 ‘공주들의 병’을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는 공주니까. 지치면 쉬고, 스스로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하며 극진히 모셔야 한다. 역경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버티고 극복하려던 직진본능을 내려두고서, 제일 귀하게. 어려움은 좀 피해가면서. 가짜 공주놀이가 이제는 별로 필요도, 소용도 없으니, 진짜 공주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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