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ry Dec 23. 2021

하나의 구두, 여러 개의 이야기

연극 <신데렐라>

(사진: Yes 24 티켓)


  유년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거나 들어봤을 동화 ‘신데렐라’. 신데렐라 이야기는 집안에서 구박을 받던 한 여자가 왕자를 만나 제 2의 인생을 사는 클리셰를 담고 있다. 고전 중의 고전인 신데렐라는 최근에도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오고 가며 사랑받았다. 하지만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왕자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유약한 공주 이야기가 주는 감흥이 시들해지고 있다. 연극 <신데렐라>는 동화 속 신데렐라의 구두가 사실은 ‘빨간색 가죽구두’였다고 가정한다. ‘사실 그 구두가 신데렐라의 발의 딱 맞지 않는 것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원래의 동화 이야기를 비틀기 시작한다. 

 작품의 큰 틀은 빨간색 가죽구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무대 위의 여성들은 홀로 등장해 구두와 얽힌 이야기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낸다. 구두는 줄곧 무대 위에 놓여 직업도, 나이도 모두 다른 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빨간 가죽구두를 시작으로, 임신부, 학생, 노파, 시인 등 다양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하여 21개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이야기들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야기 속 여성들은 모두 구두에 매혹되어 이를 신어보려 시도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에 꼭 맞는 구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떠나보낸다. 그들은 맞지 않는 구두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또 건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두는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된다. 여성들의 이목을 끌며 그들의 소유욕을 느러내게 했던 구두는 여성의 욕망을 자극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도록 만든다. 하지만 구두는 하나의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많은 여자들의 다양한 욕망과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한다. 

 <신데렐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로만 가득 차있는 연극이다. 세 명의 여성 배우가 등장해 여러 인물을 연기한다. 주로 한 장면에 한 여성이 등장하여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발화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구두의 쓰임새와 목적에 따라 각기 달리 행동하며 내밀한 욕망을 드러낸다. 이들이 말하고 몸을 움직이는 텅 빈 무대는 여성들의 움직임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로써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극이 진행되며 여성 인물들의 발화와 행동은 하나의 구두를 통해 연결되고, 이를 통한 여성들 간의 유대감이 만들어진다. 

  <신데렐라>는 하나의 구두를 통해 21명의 여성 인물, 그 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여성의 욕망과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다. 이로써 획일화된 하나의 구두로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여성들의 다양성과 함께 하나의 기준으로 여성을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공연은 오래 전 지어진 동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여 어떠한 기준으로 규정될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여기에 없는 세계에서 현실을 바라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