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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ry Dec 23. 2021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 분투하는 사람들

연극 <산을 옮기는 사람들>

(사진: 인터파크 티켓)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그저 살아간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그들이 일상을 지켜내려 분투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연극 <산을 옮기는 사람들>의 사람들이 그렇다. 작품 속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삶을 영위하려 애쓰지만, 관객석에 앉아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 분투에서 범접할 수 없는 힘과 에너지를 느낀다. 

 연극에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히말라야의 마을을 배경으로 고유의 터전과 삶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 그들의 일상 자체가 삶을 유지하려 애쓰는 분투이자 투쟁이다. 그 일상 안에는 그 삶을 파괴하려는 외부와의 갈등뿐만 아니라 가족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지키려 하는 구성원들의 개인적 고뇌가 중첩되어 있다. <산을 옮기는 사람들>은 히말라야 마을에 사는 개인과 공동체, 그 외부가 엉켜 만들어낸 실타래를 풀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작은 개인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구성하고자 했다. 


개인 삶 안의 분투

 <산을 옮기는 사람들>은 개인의 삶에 집중해 그것을 둘러싼 외부의 문제까지 시야를 확장하게 만든다. 공연에는 일상을 살아내며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 삶의 모습은 지속적인 투쟁과 분투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의 설정부터 그 삶의 모습을 대변한다. 자연에 둘러싸여 외부의 개발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히말라야의 고산이 극 속 인물들 삶의 터전이다. 그 안의 사람들은 외부와 어울려 살아가거나 쉽게 교류할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외부의 사람들은 그 삶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개선이라는 목적으로 그 터전을 바꾸어놓으려 한다. 

 연극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외부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일상을 분투의 과정으로 만들어 놓았다. 인디라는 과거 자신의 친구 사디아가 숲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겪었던 비극적인 일을 숨기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또한 그녀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중국인들로 대변되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마을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연은 그들 일상이 계속되는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드러내며 평범한 일상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러한 일상을 겪어낸 사람들의 삶에 신성함을 느끼게 만들어 평범한 사람이 살아내는 일상이 거대한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산을 옮기는 사람들>은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삶을 영위해가는 터전이 위치한 곳뿐만 아니라 그들 삶의 방식 또한 그러하다. 무대는 그들이 살고 있는 히말라야 고산 마을을 연상시키며 척박한 느낌을 전달했다. 균일하지 못한 나무판자를 덧댄 것을 배경으로 사용하였고, 무대 바닥에는 실제 흙과 자갈, 모래가 뿌려져 있다. 이러한 무대 디자인은 네팔과 인도 중간, 그 국경 사이에 놓인 히말라야 마을의 거칠고 메마른 감각을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 또한 관객과 무대가 가깝게 위치한 블랙박스 극장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극중 공간의 이미지를 최대한 전달하고자 함이 느껴졌다. 

 작품 속 인물들이 사는 세계는 현재와 함께 과거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원래의 공동체와 함께 마을 바깥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곳이다. 공연은 계속해서 교차의 방식을 통해 현재와 과거 사이, 공동체와 외부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인디라와 깐치 가족의 이야기와 그들 삶에 틈입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교차하고, 가족 구성원이 겪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번갈아 보여주며 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 삶의 모습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어느 중간에 놓인 터전을 지키려는 인물들의 분투처럼 매일이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마을 안에서의 생활을 지키려는 가족들과 개발을 위해 그들의 생활을 침해하려는 외부인의 충돌이 벌어진다. 더불어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과거의 일을 지우려는 사람과 그 과거를 파헤치려는 사람의 갈등이 드러난다. 작품은 개인적으로 보이는 후자의 갈등 또한 자연을 지키려 투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임을 드러내며 개인의 일상과 사건을 통해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부각하고자 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이'의 문제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의 공간적 특성과 뒤섞이며 내부와 외부, 개인과 사회 간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공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계속해서 장면을 겹치거나 교차하고, 그 과정에서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예컨대 사고가 온전치 않은 움나트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에 과거가 틈입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이것이 현재에 벌어지는 일인지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인지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배치하였고, 가족들이 사는 터전 내부와 외부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였을 수 있다. 하지만 잦은 전환과 더불어 현재와 과거가 산발적으로 혼합된 구성 방식이 전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의 비밀스러운 분위기와 극 전체의 환상적인 이미지 또한 작품을 전개하고 문제 의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모호함을 더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마을의 축제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 또한 가면과 음악을 통해 몽환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국적 문화 양식이 어느 문화권의 것인지 혼란스러웠고, 외부인을 몰아내고 마을을 지키려 총을 드는 인디라의 행동이 그 이국적 분위기에 희석된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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