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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26. 2023

생애, 가장 값비싼 명품

소중한 인연

사진 출처: 임영미


저는 장편소설을 3권 출간한, 명색이 소설가입니다.

주변에서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글귀신이 붙은 노동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외롭고 고달픈 직업이긴 하나, 독자들로부터 전해지는 성취감이 부정의 감정을 뛰어넘어, 사명처럼 숙명처럼 컴퓨터와 한 몸인 채 사는 듯합니다.     

 

처녀작은 이름 있는 큰 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당연히 출판사에서 해주는 대로 따랐지요.

곧 인기 작가가 되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받을 것 같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뜨끔할 정도로 비싼 명품을 눈 질끈 감고 긁었습니다.

돈이 들어올 것 같아 미리 쓰는.’ 이런 경제용어가 있던데 뭐였더라? (ㅎㅎ)

허망한 꿈일 따름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행본부터는 1인 출판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산고를 통해 세상에 나온, 단 한 부라도 어느 서점에서 어떻게 팔려나가는지, 그 유통 경로를 알고 싶었습니다.


자비로 출판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돈 쥔 사람이 갑(甲)이라는 사실을, 이미 세상 때 묻은 저는 알아버렸요.

위탁 출판사를 고르고 골라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대박이 나겠거니, 다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백화점 명품관에서 더 비싼 한 벌을 쫙 긁었습니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때를 대비, 거울 앞에서 명품을 걸치고 혼자 쇼를 했지요.

기대는 더 큰 실망을 낳았습니다.

-내가 왜 이 귀신에 들려서....

글 쓸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몸에 붙은 귀신이 떠나지 않아, 살아온 인생이 글로 방출되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2023년 11월, 세 번째 소설집, ≪신의 선택≫을 출간했습니다.


휴대폰만 들고 다시는 세상, 종이책 낸다는 사실이 민망하고 부끄러워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며, 숨은 채 인터넷으로 위탁 출판사를 검색했습니다.

단지 종이책 발간에만 의의를 두었을 따름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일고 있습니다. 책이 너무 잘 만들어진데다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이 현실….

    

 처음 책을 주변 몇 몇 문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니 너도나도 부담느끼며 손사레 치더군요.

 '두꺼워서 남비 받치기는 좋다'는 말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달랬지만, 문인에게조차 외면받는 현실이 비애롭기까지 했습니다.


 제 책 달라는 아우성이 일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1,000부 인쇄했는데, 재쇄하지 않고는 공짜로 퍼 나를 책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서점에서 사 보라고 합니다.


 오탈자 하나 없이 완벽한, 내지, 표지 디자인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책 만드는 과정, 저자와 출판사 직원 간 교류는 불가피합니다. 별 볼일 없는(?) 무명작가에게 헌신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은 출판사라 무시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니다.


  세 번째 출간하며 명품을 사지 않았습니다. 징크스가 되는 것 같아요.(웃지요)


행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주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명품이 저에게 배달되었거든요.


 작가의 긍지가 독자 아닌 출판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또한 고무적이기도 니다.


어쩌면 1인 출판을 해본 사람만이 아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M사와의 인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신간에 수록된 단편 중 <신의 선택 1, 2>는 유투브 오디오북으로 출시되자마자 10만 20만, 25만회 훌쩍 넘었다는~~~

소심한 자랑 좀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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