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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 Jul 18. 2023

플랫폼 디자이너의 업무는 어디까지일까?

외국회사에서 UX UI 디자인을 합니다.






매주 1시간의 전체미팅을 통해 지난주에 이러이러한 것들을 했고 이번주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나갈 거야 라는 부서 간 서로의 업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타 부서와의 협업이 필요한 경우 따로 개인챗을 보내기도 하나 전체미팅에서 다루는 편이에요. 시차로 인해 다국적 팀원들의 근무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챗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개발자에게 챗 하나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웠어요. 답장이 안 오면 괜히 서운하고 혹시 챗을 잘못 보냈나 몇 번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죠. 그의 험궂은(?) 인상과 다르게 저보다 어리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편안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저는 천상 한국인이다 싶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요. 모든 팀원이 개발자에게 디렉트로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쌓여있는 메시지가 어마어마하다고 해요. 저라도 그런 메세지함은 확인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되겠지만요.?



회사에 들어오고 한 달 차였을까요? 이 회사는 디자인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꼈어요. 완료되지 못한 디자인 업무가 반복해서 금주의 업무로 올라왔거든요. 무언가로인해 디자인 업무가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팀원에게 조심스럽게 이 화제를 꺼내봤어요. 업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고 계시는지 질문했어요. 팀원은 타 팀이 요청한 업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보통 월, 화, 수), 디자인 업무를 진행(수, 목, 금)하고 있었어요. 왜 디자인 업무가 차주로 넘어가지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우선순위를 두신 이유를 물어봤어요. (1) 부탁받은 업무를 오래 가지고 있고 싶지 않아서 (2) 디자인이 절대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탁받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 주려고 (3) 자신의 이름으로 부탁받기 때문에 더 큰 책임감이 느껴져서 (4) 타업무 부탁을 처리하느라 이주의 디자인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차주로 미뤄졌을 때 그것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으므로...


팀원에게도 역시 사정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주도적으로 디자인을 챙겨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디자인 업무가 제 때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건 디자인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직무 외 업무를 맡는 건 흔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업무들을 대충 적어만봐도... 각종 마케팅 자료(배너, 쿠폰 등) 준비, 발표 자료(피칭 덱 등) 준비, 번역과 카피라이팅, 박람회 등 각종 이벤트 관리, 기타 등등... 많죠? 네네. UXUI 디자이너로 들어왔다고 저는 그 업무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융통성이 없을지도 몰라요. 필요하다고 사람을 다 쓸 수 있나요. 회사의 규모, 여력에 따라... (1) 이것이 필요한데 할 수 있을까? (2)할 수 있어? 그래 그럼 네가 해봐. 가 되는 게 자연스럽죠.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요? 거절에 대한 고민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 본연의 디자인 업무와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나갈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이 대화를 시작으로 팀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팀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틀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예요. 조화로울 수 있는 중간 지점을 팀원과 함께 찾아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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