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회사에서 UX UI 디자인을 합니다.
최근, 기존 서비스를 거의 피봇하는 느낌으로 아이디에이션을 하는 미팅을 몇 번 가졌습니다. 대표의 머릿속에서 출발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이길 바랐지만 팀원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그는 이미 확신을 가지고 추진하는 중이라는 것을요. 팀원과 마치 의견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데요. 저는 믿고 싶지 않아서 부인했는데, 팀원 모두가 이렇게 말하니 그런가 봅니다. 다수가 동시에 하는 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팀원들은 그런 대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말을 그저 듣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조금은 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걱정스럽습니다.
서비스를 뒤집는다는 게 어디 전 부치듯 쉬운 일인가요. 그동안 기존 서비스를 빌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나요? 기존 서비스의 활성유저수가 줄어들어서 재기된 아이디어라면 유저로부터 그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나요. 엄청난 마케팅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홍보와 당연한 기능만이라도 버그 없이 잘 구동한다면 대표의 말이 이렇게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이 그에게만 당연하지 않은 걸까요.
시작이 반이다. 시작하는 행위에 큰 가치를 두는 말이죠. 하지만 이미 어떤 사업의 대표라면 시작이 어려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시작을 쉽게 생각해서 우려해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구축만 수도 없이 했어요. 이번에 또 한 번 뒤집는다면 또 새로운 구축이 시작되는 셈이죠. 링크드인이나 프로덕트 관련 월간지 등 오며 가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콘텐츠들을 스크린샷해두는 편인데요. 무엇을 만드는데 몰입하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라는 내용의 콘텐츠가 숱하게 많아졌네요. 고객가치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고 기능만 채워가는 식의 서비스를 만들고 있지는 않느냐는 말이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는데 팀 내에서 제 목소리에는 힘이 없네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따라가야 하는 것인가.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