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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Oct 18. 2021

어느 날의 응원

어느 봄날 저녁의 기억

“슬픔엔 더 큰 슬픔을 부어야 한다.” 

 - 『깊은 슬픔』, 신경숙-  

 

늘 마음속에 상상하며 읊조리는 구절이다. 슬픔을 눈에 보이는 물이라 치면 내 슬픔은 유리병에 아슬아슬 꽉 차 언제든 흘러내릴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지나간 아픔과 슬픔을 흘러버리려 더 큰 슬픔을 쏟아부었다. 내 모든 날이 그러했다. 

 

그날은, 엄마의 루게릭병이 확정된 날이었다. 몇 년간 이유도 알 수 없이 수많은 병원만 전전하던 엄마의 날들이 비로소 확인되었다. 곧 둘째의 출산을 앞둔 나는 엄마의 비보를 듣고도 묵묵히 재택근무를 이어나갔다. 근무하는 틈틈이 나는 유명하다는 요양병원과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치료비용은 어떤지,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그리고 이미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의 가족에게 연락했다. 어느 정도 엄마의 병을 예상했었기에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분들이었다.  

 

문득 뱃속의 둘째는 건강히 자라고 있는 건지 안위가 걱정되었다. 둘째의 숙명 같은 건지, 이 아기는 바쁜 엄마를 배려하는 건지, 도대체 자신의 생명력을 뽐내지 않았다. 

오빠에게 배를 걷어차여도, 밤에는 피곤한 엄마 자라고 하는 건지 통 태동이 없었다. 

엄마 뱃속에서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는 이 작은 생명. 

조산기로 불룩 내려온 배를 문지르며 조용히 노래를 읊조렸다. 

“ 사랑해 사랑해 또복이 사랑해.” 

첫째를 뱃속에 품고 일할 때도,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만이 알 수 있는 노래와 인사, 나의 아이들에게 건네는 나만의 의식.  

어찌 보면 이건 나 자신을 향한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외치며 이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응원 말이다.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무슨 정신으로 그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눈물은 잠시뿐이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처리했다. 

 

저녁 시간, 신랑이 퇴근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쓰는 남편은 피곤할 법도 한대 오늘 하루 있었던 소식에 나의 안색을 살핀다. 그러고는 다 같이 한강으로 산책하러 가자고 한다. 

 

벚꽃이 제법 피었다. 문득 엄마도 이 벚꽃을 보았으면, 나랑 같이 한강 산책길을 걸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쌀쌀한 밤바람에 밀려오는 이 달큰한 꽃향기를 엄마가 맡았다면, 잠시 더 희망이 생겼을까 라는 물음이 들었다. 

 

저 앞에 걸어가는 신랑과 우리 아이를 바라보았다. 새삼 숨 쉬고, 걷는 모든 평범한 것들이 비범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찬찬히 나를 둘러본다. 고단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손목뼈가 잔뜩 늘어난 게 느껴진다. 아픈 손목을 문지르고 있는 힘껏 부은 내 손을 발견한다. 주먹조차 쥐어지지 않는 손과 250 치수 샌들에도 삐져나온 부은 발. 꼭 큰아이에게 읽어주던 잭과 콩나무의 거인 괴물이 된 느낌이다. 순간 이런 상념도 어리광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울지 말아야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엄마의 아픔 앞에서 나는 그 어떤 슬픔도, 아픔도 내비쳐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울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뚜벅뚜벅 앞서가는 신랑과 아이를 바라보며 걸었다.  

 

잘 걸어가던 아이는 뒤돌아 엄마에게 돌아왔다. 우리 아이의 잠투정은 꼭 엄마가 업어줘야 하는 것 인대 6살 아들을 업는 것은 임신 중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걷다 말고 업어달라는 아이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아이에게 아빠가 업어준다고 달래 보지만, 절대 통할 리가 없다. 

 

집 앞이 다가올수록 갑자기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왜 우리 아들은 눈치도 없이 엄마에게 업히는 걸까! 왜 우리 엄마는 아픈 걸까. 왜 시댁은 애도 안 봐주고 일하는 며느리 고마운 줄 모르시는 걸까! 우리 엄마가 아픈데 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 걸까! 

 

제발 누가 나 좀 도와주지. 목적 없이 향하는 악에 받친 욕지거리와 함께 아이를 떨어뜨렸다. 

신랑이 다가왔다.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누가 보건 말건 굵은 눈물방울이 나온다. 내가 이렇게 속 시원히 울어 본적이 언제던가. 

 

신랑은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었다. “너무 아파서 그래?” 

 

그 말은 마치, 내 마음이 아픈 건지, 몸이 아픈 건지, 목적 없이 향하는 그의 물음은 나를 더 울게 만들었다.  

 

“미안해..내가 당신 많이 도와줄게. 괜찮을 거야.” 

 

앞으로 태어날 둘째 육아를 도와주겠다는 건지, 살림을 도와주겠다는 건지, 엄마 아픈 짐을 덜어주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다 문득 알았다. 

 

키 172의 우리 집 전용 최장신이지만, 누구보다 크고 깊은 마음을 가진 이 남자가, 그 모든 순간에 내 옆에 있으리라는 것을. 도움과 지지가 절실한 모든 시간에 나와 함께할 내 제일 친한 베프로, 동반자로,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 함께 할 것을. 

 

한참 참고 있던 눈물은 그날 밤 다 쏟아부었다. 유리병 속 슬픔은 약간 덜어졌을까? 

 

신랑은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얼음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비닐봉지에 얼음을 쏟아부은 후, 내 발에 대어준다. 

오늘따라 나보다 가느다란 남편의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얼음찜질해 주는 신랑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당신 만나서 다행이야, 당신 아니었으면 난 결혼 못 했을 거야.”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울어서 더워진 얼굴이 시원해진다. 

남편은 어느새 잘 깎은 복숭아를 포크로 집어 내 입에 쏙 넣어준다.  

아이는 엄마 먹으라며 요구르트 한 병을 손에 쥐여준다. 

 

그래. 이렇게 산다. 이렇게 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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