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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레 Apr 14. 2024

썅년

선이란 무엇인가 - 회심 (回心)

"원래 이렇게 이별이 힘든 거야? 진짜 이게 맞아?"

"당연하지"


이별이라는 단어는 그 누구도 몰랐으면 좋겠다. 이별이 이렇게 힘든 거라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감동적이거나 경탄을 일으키는 순간도 전류가 흐르는데, 왜 지금 내게 다가오는 이 전류는 나를 이토록 짓누르고 있는 걸까.


참 이별은 쉽다. 너랑 함께 만나는 그 순간 때문에 평생을 살아왔던 것 같은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을 거꾸로 뒤집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다시는 이 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다시는 몇 억분의 일, 몇 조분의 일 확률로 생판 남인 너와 만나게 만든 그 신경계가 있다면 다 끊어버리고 싶었다. 이별이 이렇게 쥐락펴락 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앞으로 한 사람과 손을 포개고, 맞잡고, 시간을 함께하는 데 어떻게 주저하지 않을 수 있고,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그 감정 앞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원하는 부분만 도려낼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는 걸 너를 만났기에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 하나가 결국 모든 것이었다. 그 모든 순간이 기뻤고, 버거웠고, 벅찼고, 안타깝고, 어여뻤고, 보고 싶었고, 그리웠고, 미안했고, 부끄러웠고, 괴로웠다. 이 짓을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 싶은데.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짐하는 기만함마저 범할 수 없었고,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참 오만했다. 너에게 아픔을 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십 번 고민했고, 수만 번 돌아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눈물을 보는 순간 가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동시에 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루 속에 매번 아쉬움이 남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사는 시간이 더 길긴 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이겨내고,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순간 모든 시간들이 한 번에 밀려오면서 정말 양태만 다를 뿐 매번 한결같이 배웠던 그 단어와 문장에 꽁꽁 묶어버렸다.


내 눈앞에 있는 너를 제대로 한 번도 보지 못했구나. 너의 모습을 닦아주고 어루만져주지 않았구나. 귀에 피딱지가 얹히도록 배웠던 시간들 앞에서 괴로웠다. 나조차 속였던 그 시간 앞에서 차마 등을 돌릴 수 없었다.


썅년이었다.

썅년이라는 것부터 네 앞에서 드러냈어야 했다.


착한 척하는 나로 연기하느라 손가락 마디 속에 잡힌 너의 주름마저 보지 않았다. 그저 너를 나의 세상에서만 '잘'해주는 데 그치고 말했다. 그것이 너를 위한 일이라고, 너조차 보지 못하는 너를 내가 먼저 사랑하겠다고 했으니. 네가 보는 내가 반쪽이어도, 반의 반쪽이어도 그 반의 반의 반쪽이라도 그 모습이라도 나를 환하게 웃으며 바라봐주는 네가 좋다는 걸 부정했다. 내가 여력이 안 돼서 힘들었건대 우리를 부정했다.


아픔마저 선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네 앞에서는 바닥까지 취약하게 만들었고, 기다림을 알게 해 주었고, 순이와 진수의 아픔을 뒤늦게라도 헤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랑, 이별이 아닌 이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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