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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준 Nov 21. 2024

너에게 닿다

흔들리는 도쿄(봉준호, 2008)

그는 히키코모리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동안 그의 시간은 11년 동안 멈춰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다. 닿음이 싫고, 마주치는 것이 싫은 그는 움직이지 않는 삶을 산다. 멈춰있다. 무엇이든 상관없는 삶.


마주침을 극도로 피하던 그는 작은 사고로 배달원과 눈이 마주친다.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던 그의 삶에 금이 간다. 그 금은 결국 지진이 된다. 지진은 비유가 아니다. 그 지진으로 배달원으로 온 그녀는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11년을 지켜오던 그의 세상은 와장창 무너진다.


그녀와 마주친 이후의 날들은 지난 11년의 하루와 결코 같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의 세계에 금을 내고, 지진을 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로 인해 스스로 정한 규칙을 기꺼이 어긴다. 그리고 피자를 주문한다. 배달원으로 온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다른 배달원으로부터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 그만뒀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의 머릿속엔 딱 하나만 떠오른다. 그녀의 집주소.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문을 연다.

짜증 날 정도로 햇살이 따사롭고 찬란하다. 그렇게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


"나 할 수 있을까?" "누가 날 보고 있으면 안 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는 장면 이후부터 나는 그와 호흡을 함께했다. 심지어 몇 번의 대사는 알아맞혔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직전 딱 내 발이 반만 걸쳐있을 때 지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게 된다. 그렇게 또 한 번 주춤거리게 된다. 그 주춤거림으로 보고 눈물이 맺혔다.


내가 세상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검은색만 가득하며 누군가가 너무 그리우면 가상의 유령을 만들어 보냈던 시간들. 눈물이 맺힌 그 순간 잘 삼켜냈다. 눈물을 삼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도, 나도 세상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눈부신 햇살을 두고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그와 함께 뛰었다, 그는 뛴다. 그녀에게 간다. 어정쩡하고 서툴고 조급하고 산만하다. 불안함이 보이지만, 누구보다 결연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뛴다.


그 남자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기에 그녀에게 간다. 가는 도중에 또 다른 히키코모리를 만난다.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리를 알아본다. 그리고 내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녀가 그의 눈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문을 두들긴다. 그리고 세계 전체가 흔들린다. 그 문은 그녀의 세계였으니까.

"제발 나오세요!" "만지지 마요!"

그녀가 외치는 대사의 호흡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엔 내 방문을 두들겼던 그가 마치 나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기분마저 들었다. 만지지 말라고 말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를 붙잡아서라도 밖에 나가고 싶었던 그 마음이었다.


히키코모리였던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 한 사람 덕분에 히키코모리에서 그녀가 될 수 있었다. 한 번의 지진으로 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알아본 자체가 지진이었고, 그는 매 순간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나를 만나러 왔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 더 큰 지진이었고, 결국엔 그 사람이 내게 무엇보다 큰 지진이었다.

흔들린다.


그냥 사는 게 지진이었다.


네가 너만의 방으로 들어갈 때 다시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한 때 두들겼던 적이 있다. 나오라고, 나 여기 있다고. 내 걱정이 앞서서 함부로 열지 않았던 문을 뜯고 들어갔던 적이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무서웠을까? 근데 나는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보았다.


지금은 순간순간 변하는 우리의 닿음을 느끼고 본다. 너를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고, 찾아가야 할 때 찾아가고 싶다. 사는 게 흔들림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해 준 너이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걸음을 주저하게 된다. 머뭇거릴 때 나가지 못하게 했던 나의 기억이 아닌, 눈물 날 정도로 따사로운 햇빛 앞에 서 있는 너를 본다. 그렇게 문을 쾅 닫고 너에게로 가야만 한다는 걸 모른 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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