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비닐옷

(책을 싼다는 것은)

by maybe




초등학교 때 교과서를 씌우는 일명 아세테이트지(이하 아스테이지), 책 싸는 비닐을 만난 이후 내가 가진, 나를 거쳤던 모든 책들은 투명한 옷을 입게 되었다. 몇 학년 때부터 책을 싸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단순히 책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았고, 특유의 매끈한 감촉도 좋았고, 딱 잡았을 때 시원한 느낌도 좋았다. 말끔한 겉모습이지만 막상 열어보면 한 학기 동안 손때가 제법 묻고, 필기도 열심히 해둔 정든 교과서를 학기 말에 보내는 것도 항상 아쉬웠었다. 그러다가도 새 학기에 새 교과서를 받아 들고 집에 가서 말끔하게 비닐 옷을 입힐 생각을 하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새 교과서를 매 학기마다 받아서 비닐을 씌우지는 않지만, 새 책을 부지런히 사서 매번 비닐 옷을 입힌다. 여전히 시간이 지나도 말끔하게 유지되어 있는 책이 좋아서. 하지만 이건 헌 책을 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이든 노트든 지면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비닐을 씌우곤 한다. 나무를 잘라 만든 종이에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비닐을 씌우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어쩐지 이 비닐을 씌우는 과정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습관이 되어서 수십 년째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아직 미처 비닐을 씌우지 못한 교과서가 비에 젖어 종이가 모두 우글우글해졌을 때, 그 과목을 듣는 수업 시간마다 속상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그 이후 비에 젖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비닐을 씌우지 않은 채 비를 맞지는 않게 하리라, 아니 사람도 우비를 입잖아,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사람이 매일 우비를 입는 것은 아닌데도 어쩐지 비닐 옷을 입지 않은 책들을 마주하면 계속 입혀줘야 할 것 같은 약간의 강박도 생겼던 것 같다. 그것은 도서관이든 누구에게든 책을 빌려도 꼭 비닐 옷을 입혀 돌려보냈던 이유에 대한 작은 해명이다.

여기까지 짧지 않은 썰을 풀게 된 이유는, 배달 온 25권의 책을 새벽 2시까지 하나하나 싸고 있었던 지난밤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며칠 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피곤함을 느껴 일명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었고,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던 수십 권의 책들 중에 내키는 대로 체크박스를 클릭하여 결제해 버렸다. 그리고 그 구매에 대한 행위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도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한밤중에 퇴근 후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제법 크고 무거운 책 박스를 발견하고 몇 초간 놀랐던 나를 떠올려 본다. 맞아, 내가 스물몇 권의 책을 구매했었지. 그리고 이내 이 책들은 모두 옷을 입혀야 한다는, 스스로의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박스를 열고 들어찬 책들을 가늠해 본다. 새 책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새 책의 특유의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를 맡아보고, 책을 손으로 쭉 훑어보며 차곡차곡 쌓여있는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문장들을 내 손으로 충분히 만져본다. 겉지와 속지의 재질과 두께, 들었을 때의 무게감, 그 촉감을 느껴본다. 이제는 내 책장에서 내 공간에서 나와 마주하게 될 거야. 새 책과 인사하며 예쁘게 씌워져 있던 띠지를 떼어낸다.

책과 아스테이지, 가위와 스카치테이프. 준비물은 이게 전부다. 아스테이지는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것으로, 불투명보다는 투명이, 무광보다는 유광이 좋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구매하여 만져볼 수는 없지만, 어릴 때는 화방에 가서 몇 미터씩 잘라 돌돌 말아 파는 것을 사 왔었다. 가위는 끝이 뾰족해서 깔끔하고 정확하게 잘라내는 것으로 손에 맞는 크기가 좋고, 반투명의 테이프를 선호한다. 롤에 말려있는 아스테이지를 길게 뽑아 바닥에 두고, 책을 올려 크기를 가늠하고, 반으로 접어 어느 정도의 여백을 두고 자른다. 표지 끄트머리에 맞춰 아스테이지를 팽팽하게 유지되도록 접는다. 그리고 위쪽의 비닐을 잘라 끝에 맞춰 자르고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똑같이 4번 하고, 책의 귀퉁이에 남은 여분을 끝에 맞춰 잘라내면 끝.

이런 작업을 스물몇 번 반복하면서 왜 나는 허리도 아프고, 손도 시리고, 잠도 오는데 이 모든 책을 다 씌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약간의 자책의 감정도 들었지만, 깨끗하게 비닐 옷을 입은 책들을 책꽂이에 꽂으면서 또 뿌듯한 마음도 드는 것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숭고하고 단순한 노동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어쩌다 만난 아스테이지와 어쩌다 우리 집에 와서 비닐 옷을 입은 책들,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 잡은 습관과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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