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비극으로부터, 2019. 8. 1. 22:51
아직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슬픔을 바라보며 그의 체구를 가만히 예측해본다. 오늘의 슬픔은 새벽녘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쏟아지는 빗소리를 홀로 듣게 됐던 순간이었고, 며칠 전의 슬픔은 덤덤하게 자신의 비극을 풀어놓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허탈한 웃음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슬픔은 항상 비현실적이다. 일상을 움직이는 것과 가장 동떨어져 있으며, 느끼는 모든 순간을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지게 한다. 잠드는 것도 깨어나는 것도, 걷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모든 감각들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슬픔과 함께 걷고 있을 때였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슬픔의 순간을 만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슬픈 경험은 즐거운 경험보다 항상 질척거리는 여운을 남겨두기 때문이었다. 슬픔으로부터 비껴 서서 본질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언제나 슬픔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슬픔 속에 온전히 묻혀있으면 오히려 더 차갑게 다가오는 사실들과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정하는 순간에는 슬픔을 인지할 수 없고, 오히려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에 슬픔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아직은 슬픔이 내게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이유는 아직 내가 내 친구의 비극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비극을 부정하고 있는(싶은) 단계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