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2020. 2. 24. 20:54

by maybe



모든 것이 다 오랜만이었다. 수영 갈 때 메는 가방도, 수영장을 가는 것도, 수영복을 입는 것도,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도, 수영이라는 행위 자체도 전부 오랜만이었다.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체중이 많이 늘었고, 자세와 호흡은 흐트러졌고, 앞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수영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팔과 다리가 뻐근하고 무거워짐을 느끼며, 최근 들어 얼마나 안일하고 안이하게 보냈는가. 새삼스러웠다. 그럼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이 시간을 갖고 싶었는지 또 깨닫게 되었다. 이제 몇 달은 기약 없이 수영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특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바이러스로 떠들썩한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물속에서 내 숨소리를 듣는 순간도 매우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수영을 배우는 것은 오래된 염원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10대 초반에 파도 풀에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뻔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고, 트라우마라 불리는 그 기억은 가슴팍까지 물이 찬다면 심각한 공포에 휩쓸리게 했으니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면서도 그 부분에서 항상 걱정과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아직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은 무섭고, 그런 두려움은 수영을 익히는 것도 더디게 하지만, 그러함에도 심리적으로 스트레스에 몰려있는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수영을 찾게 된다. 물론 스쿠버다이빙이 먼저 떠오르지만, 바다 다이빙은 아무래도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이니까.


두려움과 동경이 함께 공존하는 수영장, 즐거움과 공포가 파도와 함께 몰려드는 바다. 어쩌다 나는 이리도 빠지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두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스스로를 대견하다 느낄 포인트를 찾는 것인지, 혹은 극한 공포에서 오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한때 심리학을 공부했던 자로서 더 깊이 이런 내 심리를 탐구하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세계 불가사의한 일들과 동일하게 스스로에게는 영영 모를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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