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콩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콩 종류를 좋아하고, 콩으로 만든 모든 요리를 좋아한다. 살면서 나처럼 콩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콩이라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 중에 하나씩은 가리는 것을 경험했다. 짝꿍과 혈육 모두 좋아하지 않는 콩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둘 다 콩으로 만든 두부는 좋아하지만, 콩밥은 유난히 싫어한다. 아니, 왜? 콩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쌀밥보다 더 비싸다구.
부친의 당뇨가 시작된 이래로 조모는 주로 콩이나 잡곡을 넣은 밥을 지었다. 혈육, 그러니까 내 남동생은 콩을 아주 ‘극혐’했다. 하나뿐인 아들 건강 생각해서 콩밥을 지었지만, 금지옥엽 예뻐하는 손자가 콩밥을 안 먹는 것이었다. 급기야 조모는 콩을 한쪽에만 올려서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반은 콩이 올라가 있고, 반은 콩이 없는데 콩이 없는 흰밥을 먼저 퍼놓고, 나머지 밥을 퍼 놓는 방식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혈육의 밥에 늘 콩이 들어 있었는데, 콩만 딱 골라놓고 밥만 먹었다. 혈육은 콩을 참 잘 골라냈다.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밥이 싫었고, 콩은 좋았다. 나는 밥에 있는 콩만 골라서 먹었다. 혈육이 골라놓은 콩도 모두 내가 집어먹었다. 급기야 우리는 모종의 거래를 했다. 우리는 빠르게 콩과 밥을 분리하여 콩과 밥을 바꾸는 것이다. 콩은 내가, 콩 없는 밥은 혈육이 먹었다. 왜 그리 흰밥이 싫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흰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모는 종종 메주를 쑤었다. 대두를 잘 불려서 익히고, 익힌 콩을 찧어서 직육면체로 만들어 말리려고 가지런히 모아 두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몰래 메주 덩어리로 다가가 적당히 떼어서 먹고, 모퉁이를 성형해 두었다. 감쪽같다 생각했지만 매번 들켜서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혼나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식은 콩 덩어리는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에서 밥을 지어 먹지는 않지만,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항상 잡곡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콩을 넣어 밥을 지었다. 보통 콩밥이라고 하면 콩이 2, 밥이 8 정도일 텐데, 내가 지은 밥은 반대였다. 생각난 김에 콩 좀 쪄 먹고 싶어서 시장에서 콩깍지에 들어있는 생콩을 좀 사 왔다. 콩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내 입에 무척 맛있다. 그러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