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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Oct 12. 2022

인생 최초의 취향

020. 시인과 농부



‘좋다’라는 말에 들어있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좋은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감정의 크기나 정도의 차이인 것인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사전적 정의만 열심히 찾아봤던 시절. 열등감에 갇혀있던 10대였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보이는 것과 누군가의 관심에 더욱 열망하며 에너지를 소모했다. 좋은 것을 좋다 말하지 못하고, 남들이 좋다는 것만 따라 했다. 그런 내게도 어느 날 내 의지로 ‘차’와 ‘찻집’이라는 취향이 생겼다. 내 나이 열두 살이었다.


당시 의지할 곳도, 위안을 주던 곳도 교회였다. 학교나 집이 아닌 곳을 찾다 보니 어릴 때부터 다닌 교회가 자연스레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한 내게 교회는 많은 영향을 주었다. 거기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청년부 언니가 처음 찻집에 데려가 주었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내게는 은인 같은 그 언니의 태도와 이미지만 기억난다. 생각해 보면 띠를 한 바퀴 돌고 또 나이를 더 세어봐야 할 정도로 차이가 났지만, 그는 한 번도 나를 나이가 어린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말에는 배려와 존중이 묻어 나왔다. 아주 조심스레 찻집을 가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봐 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멋지다 느꼈던 첫 여성 어른이었을 것이다.


다니던 교회 근처에 있는 오래된 찻집인데, 일단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시인과 농부’라니. 어울리지 않은 듯하면서 또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옆으로 밀어 문을 열면 오래된 나무 문이 덜컹거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추랑 계피 냄새가 가득 났다. 그때 마셨던 차는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기분과 분위기는 분명하게 기억난다. 언니가 차를 마셔보라고 하면서 편안하게 웃었던 것도, 유리와 나무가 덜컹거리던 오래된 문의 소리도, 그윽하게 났던 계피 향도 모두 좋았다. 그것이 처음 접했던 차와 그 차를 마신 공간이었다. 팍팍했던 삶에 단비같이 내려주던 곳.


아직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 찻집을 나는 혼자 오래도록 다녔다. 책을 읽기도 하고, 사장님의 영화 취향을 천천히 살펴 보기도 하고,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왔다. 아마도 찻집의 이름은 동명의 오페라에서 온 게 아닐까, 추측해 보면서. 2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친구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다른 이와 동행을 하며 셀 수 없이 많이도 갔다. 하지만 아직도 거기에는 열두 살의 내가, 처음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좋다고 말했던 내가 곳곳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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