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보다 천년전에 미대륙을 발견했다는 아이슬란드출신 바이킹과 그가족들
아이슬란드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양이 뛰노는 목가적인 푸른 초원, 피오르드 등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슬란드가 속한 북유럽 문화권(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지금이야 이케아 혹은 아바/에이스 오브 베이스/아비치 등으로 대표되는 깔끔하고 세련된 차도남 차도녀의 미니멀리스틱 문화가 생각나지만…
사실 이곳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8-11세기에 배 타고 다니며 무자비하게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바이킹의 본거지이다.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주욱 흩어보다 보면 북유럽 바이킹 문화권의 중심에서는 살짝 소외된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외세의 관심 밖에 조용히 살기도 하다 또 가끔 치이기도 하다 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 온 점이 한국과 살짝 비슷한 점도 있는데... 그중에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아이슬란드 출신 이 바이킹 가족의 이야기였다.
이 바이킹 가족 중 첫 번째 소개할 인물은 빨간머리 에릭(Erik the Red, c. 950-1003)이다. 이 빨간머리 에릭은 원래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동네에서 쫓겨나서 가족이 아이슬란드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전자전이다. 에릭 역시 이웃집과 다툼 끝에 사람을 죽이고 아이슬란드에서 3년간 쫓겨난다. 쫓겨난 에릭은 우연히 옆 동네 섬, 지금의 그린란드에 도착하게 되고 망명의 시간을 이 신세계를 탐험하는데 오롯이 사용한다. 이 땅에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에릭은 3년의 시간이 끝나자 아이슬란드의 원래 살던 동네로 돌아와 이주단을 모집한다. 이름도 얼음밖에 없어 보이는 '아이슬란드' 보다 저 푸른 초원이 연상되는 '그린란드'로 짓고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구글맵을 보면 알겠지만 정작 그린란드는 온통 하얀 빙하로 덮여있고 되려 아이슬란드가 짙푸른 초원색이다).
"야, 있지, 내가 나가 있는 동안 배 타고 좀 가 보니까 저기 어디 완전 신세계가 있더라고. 완전 좋아. 양 떼 기를 목초지도 엄청 많아서 심지어 이름도 '그린란드'야. 더 좋은 건 거기는 세금 내라 법 지켜라 이렇게 귀찮게 구는 사람들도 없어. 가면 우리가 왕이야. 여기서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말고, 거기 가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폼 나게 살아보지 않을래? "
이 감언이설(?) 혹은 천재일우(?)에 넘어간 사람이 꽤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것은 없지. 25 척의 배가 신세계에서 일확천금의 풍운의 꿈을 안고 출발했는데 가다가 풍랑과 전염병으로 반이 넘게 죽고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간신히 14척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찾은 그 신세계를 개척하며 일생을 보내다 20년 정도 후 후발 주자로 출발한 정착대에 묻어온 풍토병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두 번째로 소개할 인물은 이 빨간머리 에릭의 아들 행운아 레이프(Leif the Lucky, c. 970-1019~1025?)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청소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그린란드로 이주한 레이프는 최초로 미대륙을 탐험한 유럽인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레이프가 노르웨이에서 올라프 왕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어 그린란드로 돌아오다 풍랑에 휩쓸려 현재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에 상륙하여 그 지역을 탐험하고 포도나무가 많다고 하여 바인란드(Vineland, 포도나무의 땅)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돌아왔다는 설과 내가 풍랑을 만나 떠내려갔는데 저 먼바다 끝에 이런 곳이 있다카더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탐험대를 구성하여 떠났다는 이야기. 돌아오는 길에 난파된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구조해 주면서 행운아 레이프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이야기지만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500년 전에 이미 레이프가 미대륙을 탐험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고고학적 증거로도 뒷받침이 되며, 그로 인해 바이킹의 후손 북유럽인의 자부심을 북돋워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신여성 여행가 구드리드(Guðríðr víðfǫrla Þorbjarnardóttir, 980-1019)이다. 나는 발음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성을 가진 이 분은 행운아 레이프의 제수씨로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 살다 아버지와 함께 신세계를 찾아 빨간머리 에릭(레이프의 아버지. 훗날 시아버지가 된다)의 그린란드 이주단에 합류하셨는데 그린란드에 정착하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이 분은 그 당시에 결혼을 3번이나 하셨는데, 첫 남편은 그린란드 도착 후 일찍 병들어 죽고, 두 번째 남편이 행운아 레이프의 동생이다. 이 남편이 구드리드와 함께 레이프가 발견한 미대륙 원정대로 참가하였으나 아뿔싸~ 병들어 죽게 된다, 그리하여 세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된 구드리드는 세 번째 남편과 함께 자체 원정대를 조직하여 미 대륙의 곳곳을 여행하였다고 하는데 굽이굽이 남쪽까지 내려와 심지어 지금의 맨해튼에서 최초의 유럽 출신 미국 시민권자 아들을 원정 출산하셨다는 설도 있다(나보다 거의 천 년 전에 이미 맨해튼에 와 보셨다니!).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이 세 번째 남편 역시 병들어 죽자 이 분은 고향인 아이슬란드로 돌아가 교회를 지은 후 숨은 현자로 남은 여생을 사셨다고 한다. 로마까지 가 교황을 만났다는 설도 있다고 하니 당대의 핫플레이스는 다 가 보신 분인데… 그 당시 세상 아래 모든 것을 다 보신 분의 인생의 결론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를 외치고 하나님께 귀의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정말 만나서 차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눠보고픈 당대의 바이킹 여걸이다.
스토리텔링은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위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역사적인 장소로 거듭나기도 하고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장소가 그곳에서 일어난 나만의 스토리로 인해 아름다운 기억의 옷을 입고 평생 잊혀지지 않는 곳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땅을 떠나 신세계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지금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슬란드에서 바이킹들의 이주 스토리를 들으며 천년도 더 지난 시간을 사는 지금의 내가 공감이라는 문을 통해 잠시나마 그 삶을 상상으로 살아보는 것 역시 여행의 소소한 재미이다.
내가 지금 써야 할 나만의 스토리는 무엇일까. 그렇게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쌓인 나의 인생은 어떠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