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잘하는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포스트 팬데믹 첫 여행기
2022년 3월, 우리 가족은 한국을 강타한 코로나 광풍에 휩싸여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각자의 방에서 몸져누워있던 우리 가족이 하나둘 추스르고 일어나 쉬었던 목소리로 대화가 가능해질 무렵, 아빠가 말씀하셨다.
" 우리 아이슬란드 갈까?"
사실 나는 이미 아이슬란드에 가 본 적이 있다. 워라밸이 가능한 미쿡 응급의학과 의사의 훌륭한 라이프 스타일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여행의 최첨단 트렌드의 선두에 앞장서서 살던 시절, 한창 신흥 여행지로 각광받던 아이슬란드를 나는 이미 버스 타고 중요한 건 대충 보았었더랬다. 그리고 과거에 그 당시 참 철딱서니 없던 나에게 나름 트라우마를 안겨 준 가족 여행 https://brunch.co.kr/@jeunloves/39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반면 부모님은 원래 2020년 여름, 아이슬란드에 갈 계획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를 해 두셨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의 파장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고, 절차탁마하며 꾸준히 때를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는 온 가족이 코로나를 겪고 면역자가 된 이 절호의 찬스를 이용해 다시금 아이슬란드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자연히 나를 빼고 부모님과 언니 둘을 중심으로 우리 가족의 여행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큰언니가 개인 사정으로 못 갈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자 그 빈자리는 자연스레 나로 대신 채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어부지리로 20여 년 만에 다시금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슬란드로.
여기까지 가만히 보면 내가 참 이상한 딸인 것 같다. 아니, 부모님이 계획도 다 짜서 심지어 아이슬란드를 데려가 주신다는데 반응이 왜 저래?
그 말 맞다. 그렇다, 나는 못돼 쳐 먹은 막내딸이다.
천천히 조근조근 보면서 하나를 오래 음미하는 것을 즐기는 나와 달리 우리 부모님은 하나라도 더 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제한된 양의 시간에 엄청난 양을 소화해내실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 시대를 몸소 살아내신 분들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일정은 주로 신새벽에 시작하며 늦게까지 이어진다. 가끔 일정 소화하느라 끼니도 거를 때도 있다. 나에게 있어 가족 여행은 휴식이라기보다는 뭐랄까... 각오 단단히 하고 다녀오는 부트 캠프 느낌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하지만 그런 부모님 덕택에 나는 견문이 넓은 사람이 되었고- 우리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한 번 다녀오면 그곳에 사는 보통의 현지인만큼, 혹은 더 많은 것을 보고 오게 된다- 어깨너머로 배운 풍월도 있어 결국 나는 혼자 여행의 대가가 되었다. 그래서 참 많은 곳을 다녀 보았는데 그렇게 수많은 나라들을 가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녀 보고 내린 결론은...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가 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과 함께 나 역시 오롯이 나를 위주로 살던 삶에서 함께하는 삶으로 조금씩 중심이 옮겨가면서 철없던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던 부모님의 마음도 아주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떠났다. 불혹의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2주 간의 아이슬란드 자유 여행을.
* 사진은 내가 찍은 아이슬란드의 검은 폭포, 스바르티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