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미니버스 타고 떠난 캐나다 대륙 횡단 여행 이야기.
4주간의 힘든 로테이션을 마치고 맞이한 휴일.
마지막으로 일한 어텐딩도 세계 여행을 좋아하시는 캐나다 분이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온 가족과 함께 했던 나의 캐나다 횡단 여행이 생각났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여름, 나의 아버님께서는 온 가족을 이끌고 캐나다 횡단 여행을 계획하셨다. 캐나다의 서쪽 해안 도시 밴쿠버에서 시작해서 동쪽 끝의 항구 도시 핼리팩스까지. 그때 때마침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소니 사이버샷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렌터카를 빌리고 숙소를 예약하고 직접 일정을 계획하는 자유 여행을, 그것도 온 가족을 이끌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가 참 대단하시지만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 줄 몰랐다.
캐나다의 첫 목적지는 서부의 해안 도시 밴쿠버. 우리는 에어 캐나다를 타고 갔는데, 참 기나길게 느껴지던 비행 중 승무원이 "Coffee or Tea?" 커피 드시겠어요 차 드시겠어요?라고 물어서
"What kind of tea do you have?" 어떤 종류의 차가 있나요? 했더니
자꾸 "Tea!" 이러길래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내 첫 문화 충격의 에피소드로 곧잘 나누는 이 일화는, 이제 어언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차가 있으리라 생각해, 에어 캐나다 ;)
십 수 시간의 비행 끝에 내린 밴쿠버는 정말 이런 곳이 있는가... 싶은 곳이었다. 경치도 너무 아름답고 해변가 도시라 아름다운 바다와 공원도 많고 사람들도 너무 자유로워 보이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너무 여유로워서 그렇게 덥지 않은 여름의 햇살 아래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정말 외쿡의 대도시는 이런 곳이구나... 하면서 설레발치며 언니랑 여기저기 다니던 기억이 난다. 공공장소의 표기가 영어 불어 두 개로 되어 있고, 수족관에서도 영어하는 사람 불어하는 사람을 물어본 후 두 언어 모두로 설명을 해 주던 것을 신기해하며 고속도로 표지판에 계속 나오는 sortie라는 내 생에 최초의 불어 단어를 알게 되었던 그때. 고속도로를 달리다 곰, 사슴과 같은 한국에서는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던 동물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녀서 처음에는 신기해라 넋을 놓고 멈추어서 보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했다.
밴쿠버에서 하루 정도를 차로 달리면 그 이름도 유명한 록키 산맥이 나오는데, 이 곳에는 스키로 유명한 휘슬러 산과 빙하가 녹은 물로 생성되어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깔의 크고 작은 호수들, 그리고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으로 기억되는 Lake Louise 가 이 곳에 있다. 고도가 높아서 여름에도 추워서 파카를 입어야 했고, 등산을 해야 하는 적도 많았는데 등산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낯선 사람에게도 Hi~ 하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것도 신기했었다. 지금 다시 가면 감사하며 눈에 박힐 만큼 바라 볼 록키 산맥을 그때는 전형적인 어린이 마인드로 차에서 내리기 귀찮다고 짜증내고, 신발 갈아 신기 싫어서 슬리퍼 신고 빙하 가까이 올라갔다 내려오고 했던 생각도 난다. 엄마가 춥다고 신발 갈아신으라고 그렇게나 잔소리를 하셨더랬지... 하지만 추웠던 기억도 안 나고, 미끄러져 넘어진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면 괜찮았던 것 같다.
토론토에 들러 그 당시 몇 년 전에 이민을 오셨던 이모 가족을 만나 눈물의 상봉을 하고, 이제는 10명의 대가족이 되어 커다란 미니 버스 같은 차를 타고 유럽의 한 도시를 옮겨 온 것만 같던 쿠벡, 뭔가 자유로운 영혼이 넘치는 것만 같던 몬트리올, 바닷물에 부딪쳐 부서지던 눈부신 햇살이 기억나는 thousand islands,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이 된 Prince Edward Island를 거쳐 타이타닉으로 기억되는 동쪽의 핼리팩스에 이르기까지. 잠깐,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타닉은 대서양 한가운데서 가라앉았는데 왜 온통 그 도시는 타이타닉 얘기밖에 없었을까... 나의 기억의 편향인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딱 나 같던 사촌 동생과 함께 산이고 바다고 호수고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는 철없는 소리를 하면서 집에 가자고 보채고, 차에서 안 내리겠다고 떼쓰면서 힘들게 계획하고 운전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을 깡그리 몰라주었던 그때의 나. 이제는 철이 넘치고도 남을 나이인데 아직도 그 철없음으로 여전히 부모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사춘기 소녀처럼 나만 보고 산다. 코비드로 발이 묶여 있는 지금, 이제야 20년 밀린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 철없고 짜증만 가득하던 저를 데리고 캐나다 곳곳을 누비며 여기서 만나는 웬만한 캐나다 사람보다 더 캐나다 구경을 많이 해 본 딸 만드시느라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이 펜데믹이 끝나고 나면, 이제는 제가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표지 사진은 inspirato 웹사이트에서 퍼 온 Lake lou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