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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Dec 26. 2020

나의 파키스탄 이야기 2.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 맞이한 나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우리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난민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실전으로 투입되었다. 다들 먼지 나게 공부만 하다 온 의대생들이었지만 알고 보니 모두가 유년 주일학교 출신이라 의외로 스토리텔링과 노래, 율동, 공작에 기본기가 탄탄했다. 서로의 숨은 재능에 감탄하며 우리는 난민 캠프의 아이들에게 그 날 그날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 무렵이라 성탄의 기쁨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이슬람 국가라 기독교 관련 활동이 금지되어 있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다 같이 캐럴을 부르면서 성탄을 축하했다.


    우리가 준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은 후 이름을 써서 주는 것이었는데, 당장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몇 달째 추운 텐트에서 기약 없이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마음도 같이 환해졌다. 받은 돈의 대부분을 필름 사는 데 썼을 만큼 많이 사 갔지만 그래도 난민 캠프의 아이들을 다 찍어주지는 못했다. 혹시 파키스탄에 아직도 그 사진 갖고 있는 애가 있을까...? 생각하며 가만히 미소 지어 본다.   


    어느 날은 난민 캠프에 주둔하면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던 파키스탄 군대의 장군님께서 주최하시는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동안 못 먹었던 고기와 파키스탄 현지 요리를 마음껏 먹으며 기뻐하고 있는데 장군님께서 우리 팀원 각자에게 영어 쿠란을 주셨다. 순간, 어머, 영어 쿠란이 있어? 쿠란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면 사형 아니었나? (쿠란은 이슬람교 초기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종교가 성장하면서 아랍어가 모국어가 아닌 신자들이 늘어나 지금은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아직도 번역본은 아랍어 원본과 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하는 생각이 들어 평소 호기심 가득한 나답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꾸벅 받았다 ㅎㅎㅎ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지역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해 차가 너무 흔들려 다들 멀미로 쓰러지고 비포장 도로에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돌아오니 온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로 뒤덮였던 기억. 그 와중에 사진 찍겠다고 찍다가 심령사진 찍힌 것도. 휴지가 귀하던 곳에서 금방 뜯은 휴지 한 롤을 화장실에 투척하여 지탄을 받았던 줄무늬 박팀장. 그리고 내가 뽑은 새해의 말씀,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감사함이다. 나는 파키스탄 이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은 구호 활동에 참여했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파키스탄 사람들만큼 진솔하게 우리의 도움에 진정 어린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환경은 열악할지언정 사람들의 긍지와 존엄성이 살아있었다. 왜 그럴까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난 그때의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살아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춥던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보낸 나의 크리스마스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데, 그동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팍팍하게 나만 바라보고 사느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이 기회를 빌려 해가 가기 전에 감사 일기를 꼭 한 번 써 보고, 빼먹지 말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완화의학을 하면서 더더욱 느끼는 것은, 감정은 표현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그 감정들을 우리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기에도 너무 짧다.

  15년 전 그런 난데없는 제안서에 사인을 해 준 나의 멘토 정 교수님, 그리고 멋진 기회를 허락해 준 나의 모교,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주 일정을 마치고 1월 1일 밤에 돌아와서 그다음 날 바로 새벽 6시 출근 외과 실습으로 들어갔는데, 나를 보신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선생님은 방학 동안 스키장 다녀왔어요? 얼굴이 많이 탔네~" 하시길래,

" 아, 네, 파키스탄 좀 다녀왔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시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보낸 나의 본과 3학년 겨울 방학은 훗날 미국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고되고 힘들 때마다 계속해야 하는 큰 이유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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