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수도에서 맞이한 나의 새해.
띵동~
" 우리 몇 년 전 오늘 부에노스 아이레스 갔던 거 기억나?
다사다난하던 2020년이 이틀 남은 오늘 아침, 오랜만에 칼라에게서 온 문자를 보면서 갑자기 소환된 몇 년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보낸 나의 New Year's Day 가 생각났다.
기억은 이렇게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면서 공존할 때, 서로의 기억 속에서 더 오래도록 남는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제일 가 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는데, 이유는 스페인어 악센트가 너무 멋져서다. 나는 뉴욕에서 일하면서 스페인어를 하는 환자들을 많이 접해서 스페인어를 꽤 많이 알아듣는데, 예전에 여행하면서 만난 한 사람이 쓰던 스페인어는 억양이 참 독특한 것이 마치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어, 너는 어디서 왔어? 물어봤더니 아르헨티나라고 했다. 그래서 아, 언젠가 저기는 한 번 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는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와 이과수 폭포도 있고 양질의 스테이크와 와인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갈 이유가 많은 나라다.
때마침 칠레의 산티아고에 살던 내 친구 칼라 역시 시간이 난다고 해서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칼라는 칠레 출신의 응급의학과 의사인데, 우리는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다 처음 만났다. 그렇게 흔하지 않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진 이후, 칼라가 뉴욕에 놀러 오고 보스턴 응급의학 학회도 같이 가고, 같이 칸쿤으로 놀러 가기도 하면서 우리는 더 친해졌다. 칼라는 루푸스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보다 훨씬 성숙하다. 일상에 감사할 줄 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친절하고. 얼마 전에는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칠레의 소도시로 이사해서 정말 소확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나의 멋진 친구이다.
아르헨티나는 남반구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12월은 한여름이다. 뉴욕에서 쉬프트를 마치고 레드 아이(밤샘 비행)로 날아가 아침에 도착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 느낌은, 내가 그래서인지 뭔가 부스스~했는데 그렇게나 여행을 많이 다닌 나이지만 아직도 나는 새로운 도시의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가는 것이 살짝 긴장된다. 그곳이 처음 가는 곳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서 숙소에 도착해 내가 아는 반가운 얼굴을 만났을 때, 마음이 탁~ 놓이면서 너무나도 기뻤다. 그 간의 회포를 재잘재잘 수다로 풀며 우리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첫 시작지인 워킹 투어의 출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투어를 하면서 스페인어를 하는 칼라가 아르헨티나의 와인으로 유명한 멘도자에서 온 알란과 후안을 사귀어 우리는 4명이 되었다.
워킹 투어를 하면서 본 아르헨티나는 일단 모든 게 큼직큼직하다. 이유를 들어보니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자신들이 떠나온 유럽의 도시들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자존심 싸움으로 무조건 더 크게 지었단다. 후안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람들은 자기들을 포르테노(Porteño)라고 부르는데 거만하고 재수 없다고 한다. 어딜 가나 대도시 사람들은 비슷한가 하면서 뉴욕 사람들도 그래~ 하면서 구글로 좀 더 찾아봤더니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유럽 문화를 가지고 정착하였는데 그중 대다수가 이탈리아, 스페인 출신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반했던 그 악센트는 이태리 말과 흡사한 것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가는데, 알란이 잠깐만~ 하고 가더니 누군가를 데려온다. 투어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떠나는데 혼자 나무 밑에 앉아있어서 마음이 쓰여서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는 마음씨도 착한 알란이 데려온 이 소녀는 네덜란드에서 갓 대학을 졸업하고 남미로 6개월치 배낭여행을 온 리즈였다. 2명으로 시작한 우리는 이렇게 5명이 되어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판에는 밀라네사라는 한국의 돈가스와 거의 흡사한 요리가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리즈가 어! 이거 슈니첼과 비슷한 건데? 하길래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걸 돈가스라고 불러 하면서 우리는 재잘재잘 수다를 이어나갔다. 리즈를 제외한 4명 모두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음식을 나눠먹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타지에서도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도시의 건축과 문화가 아름다운 것 같으면서도 뭔가 허전한, 뭐라 꼭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전반적으로 뭔가 2%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던 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기억을 100%로 채워준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고기와 와인. 아르헨티나 고기는 정말 맛있다. 스테이크를 한 점 한 점 씹다 보면 머릿속에서 초원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소의 모습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신선하고 좋은 고기가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매번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추억은 방울방울 내 기억 속의 세계 지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편에 박힌 또 하나의 진주는 탱고다. 음주가무에 능한 라틴문화권에는 살사, 바차타, 메렝게, 룸바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댄스가 있는데 나는 유독 Classy but sensual 한 탱고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탱고의 원산지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지금, 꼭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로컬들의 '그거 투어리스트들이나 하는 거야~' 하는 비웃음을 무릅쓰고, 칼라와 함께 갔다. 남성 중심의 문화권의 댄스답게 남자는 리더 여자는 팔로워라고 하며 그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좋은 파트너는 상대의 순간순간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상태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춰 배려심 있게 페이스를 조절하고 적당히 테크닉을 넣어 춤을 재미나게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다.
가서 기초 스텝을 배운 후, 금방 탱고를 추기 시작했는데 아, 이건 내 춤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퍼서 짝발도 밟고, 내 파트너와 부딪히기도 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신나서 계속하는 나에게서 어떤 빛이 났는지 스태프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더니 무대로 훽 이끌었다. 그때는 탱고의 탱자도 잘 모를 때였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아, 그런데 이 남자는 프로페셔널 댄서답게 정말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었다. 적절한 스피드에 간단한 스텝과 몇 가지 기본 동작만으로도 화려한 댄스를 연출해 낼 줄 아는 이 사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만 가도 너무너무 즐거웠다. 빛나는 조명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춤을 춘 후, 박수갈채를 받으며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내려오면서 독립적이고 내 의사 결정은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나이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따라가는 것도 편하고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새해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맞이한 후, 칼라는 산티아고의 집으로 나는 파타고니아로 빙하 보러 여정을 계속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