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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May 22. 2022

너희가 해운대를 아느냐 feat.해리단길 그리고 구남로

네이티브 부산인이 하는 상전벽해 해운대의 변천사 이야기

   햇살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던 오늘, 해운대로 가족 브런치 마실을 나갔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 위를 광안대교를 타고 씽씽씽~ 달리며 아이파크를 바라보는 그 느낌은 정말 달려 본 사람만 알 것이다.

 

    광안대교, 영어로는 Diamond bridge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부산의 대표적인 야경 1번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낯에도 선명한 이 흰색 현수교는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과 함께 이름처럼 다이아몬드같이 빛나지만 밤에 조명이 비치면 더 아름답다. 지금이야 이렇게 부산 관광 1번지이지만 부산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사실 하나. 1990년대에 건설을 시작할 당시는 광안리 뷰를 망친다, 환경 파괴, 아무도 안 탈 것이다 등등의 이유로 반대 여론이 꽤 거셌다. 많은 부산 사람들이 저 다리가 못 서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30년 정도 지난 지금 이 다리가 창출하는 효과는 엄청나다. 나는 이 다리를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나의 부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겨 보곤 한다. 매년 1월 1일, 교통을 통제해서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데...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올려 두었다.


  식사는 딤타오라는 딤섬 식당에서 했다. 홍콩의 미슐렝 식당에서 일하셨다는 홍콩인 셰프가 하는 곳으로 대기가 평일에도 보통 20팀이 넘도록 붐비는 곳이라 우리는 항상 오픈런을 한다. 그런데 기다리다 보니 캐리어 들고 기다리는 사람, 서울어를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외국인도 있었다. 아니, 왜 내 고향에서 내가 외지인 같지? 그러고 보니 여행이 점점 일상화가 된 요즘, 부산의 맛집은 네이티브 부산인이 가는 곳과 외지인들이 가는 곳이 조금 갈리는 것도 같긴 하다.


 이곳은 해리단길이라는 해운대 기차역 뒤편의 새로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떠 버린) 핫플레이스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정말 소박한 일반 주거지였는데 지금은 예쁜 가게들과 사람들로 복작복작대고 있었다.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좀 했는데 참 독특한 가게들이 많았다. 게 중에는 이런 가게가 있었다. 이름하여 근떡.

사진은 근떡 인스타그램


  그리고 오늘의 주목적이었던 해운대 모래축제 위해 해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남로라는 해운대역해운대 해수욕장을 이어주는 완전 번화로를 지나간다. 지금이야 해운대 최고 번화로 중의 하나지만 30년쯤 전엔  오는 날이면 흙탕물  튀고 하던 그저 그런 길이었다. 리베라 백화점  31 버스 종점 아는가? 내가 어릴  리베라 백화점이 해운대 최초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고 해서  구경 가고 그랬는데.... 안타깝게도  백화점은 한국 재벌 유통계의 불꽃 튀던 부산 대첩에서 패하여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이렇게 말하니깐 내가 너무 옛날 사람 같네... ㅎㅎ 그러면서  기억 속의 해운대를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해운대는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바닷가이자 최고급 부동산들이 있는 곳이지만, 원래는 주거 지역이 아니었다. 아빠 말이 아빠가 젊은 시절의 해운대는 광활한 논밭과 뻘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서 엄마가 "수영 비행장이 있었지...?"라고 하셨다. 찾아봤더니 오마이갓, 그곳은 현재 해운대 근처의 모든 상호에 다 붙어있는 이름 센텀이 유래된 센텀 시티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수비 삼거리라는 이름에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여름이면 신문에 종종 해운대 해수욕장 백만 피서인파 돌파! 하는 이런 기사들이 실리곤 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89/nwdesk/article/1825151_30389.html


    그런 기사를 보면서 사람들이 부산 사람은 여름에 해운대 안 가는데... 하면서 웃고 하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되었던 90년대 중반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하나, 둘 해운대로 전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분 내는 날이면 피자 먹으러 가던 달맞이 길에 있던 언덕 위의 집은 코로나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휴업하였고 그 가는 길에 있던 땡땡땡~ 소리 나는 차단기가 있던 미포 철길은 이제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고 관광용 해변열차가 다니고 있다.

  

    그 외에도 해운대 해수욕장 대로의 지금은 스타벅스가 있는 자리 즈음에 커다란 아치와 로널드가 앉아있는 벤치가 있던 3층짜리 맥도널드 전용 건물이 있었다. 그 당시 한국에 얼마 없었던 미국 신문물의 상징 맥도널드의 인기는 요즘 애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는데- 신촌 맥도널드, 압구정 맥도널드를 기억하는 당신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세대- 내 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 속에는 맥치킨 버거 세트가 꼭 들어있다. 세월이 흘러 먹거리가 더 다양해지고 패스트푸드가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맥도널드의 인기도 줄어들고,  해운대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있던 그 가게는 허물어지고 지금의 고층빌딩이 들어섰고 맥도널드는 그 살짝 뒤 지금의 해운대 DT점 자리로 이사를 갔다.  


 

  



  명색이 부산이 고향이지만 이곳에서 산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고향이 어디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그럴 때마다 Home is where the heart is 라는 말을 떠 올리며 마음속의 부유浮遊함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난 후, 직장을 옮길 때 잠시 뜨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회귀하는 연어처럼 부산 본가로 돌아와 몇 달씩 지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내가 미처 몰랐던 부산의 매력을 발견하면서 고향의 소속감과 부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해산물이 맛있는 부산 오뎅의 부산. 일본 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시절에도 왜색이 짙던 부산. 해운대 광안리 그리고 기장의 부산. 자갈치의 부산. 부산 국제영화제의 부산.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제일 중요한 부산은 우리 엄마아빠가 있는 부산이다.


오늘의 주 목적 해운대 모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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