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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Jan 05. 2022

My Fair Barista

그의 이름은 아빠

    지난가을,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써 오시던 캡슐 커피 기계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잔 내릴 때마다 꺼억~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평상시의 반도 안 되는 양의 커피를 내려놓는 기계를 보며, 아쉽지만 이 아이를 보내어 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편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캡슐 커피를 따라올 자가 없지만, 마시면서 그렇게 맛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우리 집의 커피계의 업그레이드 겸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반자동 커피 기계를 사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70대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으며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보는, 기계를 잘 다루는 꼼꼼하고 은은한 취향을 가진 부지런한 아빠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아빠 찬스를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일어 공부 국어 공부 매일운동 스마트폰으로 그림 그리기... 아빠의 하루는 바쁘다. 

     

    

주변에 수소문과 인터넷 검색 끝에 명절 할인과 카드 할인 찬스를 써서 업어온 아이에게 아빠는 역시나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에스프레소 샷 추출 정도는 단번에 마스터하시더니만 라떼 아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밤이야 낮이야 유튜브를 보며 연구하며, 우유와 코코아 가루로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씩 라떼아트 연습을 하며 웬만한 바리스타 뺨치는 라떼 아트 스킬을 구사하기 시작하셨다. 어찌나 연습을 많이 하셨던지 아빠가 라떼아트 연습하는 방에 들어가면 뭔가 쿰쿰한 우유 비린내가 진동할 정도였다! 각종 장비 욕심도 생기셔서 프렌치 프레스도 구입하고 심지어 라떼 아트 전용 거품기도 이것저것 알아보시고 하나 장만하셨다. 바리스타 자격시험을 보라고 권유도 해 보았지만, 아빠는 그냥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으시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웬만한 커피숍보다 훨씬 나은 카페 라떼를 마신다. 나는 이제 밖에 나가서 웬만한 커피숍의 커피는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 집의 일반 모닝커피 클라쓰.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하시는 나의 아빠는, 

그 열심으로 어린 시절, 나를 이리저리 몰고 조련했던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타이거 아빠셨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효율과 재미가 중요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던 나는 무얼 하든 100을 요구하는 아빠에게, 


 " 아빠, 그럼 나는 80씩 5개, 400의 인생을 살게! 100씩 4개나 80씩 5개나 어차피 똑같잖아! "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어릴 적보다 나이 든 지금 이해가 더 잘 되는 아빠의 이 보기 드문 열심은 참 본이 되는 장점이다. 






    

오랜 시간 동안 대륙과 대양을 건너는 이사를 여러 번 하며 다양한 곳에서 혼자 삶을 꾸려야 했던 나는, 그래서인지 나의 독립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에 민감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혹은 필요한 것들은 원하는 때에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배우는 편으로, 미국의 시골로 직장을 잡았을 때는 잠깐 쉬는 시간 동안 한식 조리사 자격증 코스를 듣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런 내가 아직 우리 집 커피 기계를 사용할 줄 모른다.  

매번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에 아빠에게 부탁을 해야 하지만 그런 의존성이 불편하게 여겨진다기보다는, 

기분 좋은 나의 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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