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아닌, 환자 가족으로 경험한 심정지는 이러했습니다.
영화배우 강수연 씨가 별세하셨다. 55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매듭지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사인인 뇌출혈은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살다가도 하루아침에 떠날 수 있는 질환인지라 월드스타 그녀의 죽음은 더욱더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응급의학이 나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 중 하나는 죽음은 늘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언제 덥석 내 손목을 낚아챌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전 그날은 지금도 시간 단위로 복기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4년 간의 응급의학 수련이 끝나가던 무렵, 내 레지던트 동료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던 그날 새벽,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비몽사몽 간에 받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들리던 언니의 당황한 목소리,
아빠가 쓰러졌어
아직 잠이 덜 깨 혼미하던 와중에도 뭔 소리야 하면서 좀 더 물어봤더니 아빠가 배드민턴을 치다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가셨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syncope(실신) 정도로 생각하고 이런 응급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언니가 놀래서 저러는 거라 생각하고 뭐 살다 보면 한 번쯤 쓰러질 수도 있지 하며 병원에 가서 상황 파악하고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구급차로 실려갔다고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다고도 하는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말을 자꾸 하길래 잠이 확 깨어 일어나 앉은 후, 일단 전화 끊고 빨리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곧 이어진 몇 통의 전화에서 나는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빠는 여느 때처럼 배드민턴을 치다 몸이 안 좋았는지 벤치에 앉았는데 갑자기 스르륵 쓰러졌다고 한다. 때마침 같이 치던 분 중에 내과 의사분이 계셔서 바로 bystander CPR(목격자 심폐 소생술)이 시작되었고 119 연락해서 아빠는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응급실에 들어올 때는 asystole(심장 활동이 완전히 멈춘 상태)로 오셨는데 그곳 응급 의료진들의 심폐 소생술 덕택에 일단 심장 박동이 돌아왔지만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 상태가 너무 위급해서 전원이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지만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내 안의 응급의학과 브레인을 켠 후 어세스먼트를 시작했다. 다운 타임(심박동이 완전히 멈추었던 시간)이 몇 분 정도 되었냐고 물어보니 15-25분 정도 된단다. 아, 그 정도면 일단 살겠고 이제 빨리 옮겨야겠구나. 심장이면 어떻게든 살 것 같긴 한데, 혹시 뇌출혈이면 어떡하지. 언니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지역 대학병원 심장혈관 센터로 옮기라고 한 후 나는 한국에 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친구에게 결혼식 못 간다고 전화하고, 짐 싸다 갑자기 현타 와서 엉엉 한 번 울고, 다시 눈물 닦고 일어서서 당일 국제선 표는 어떻게 사나 이리저리 알아보고.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한 번 더 왔다. 전원 하는 앰뷸런스 안인데 아빠가 구토를 한다고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하길래, 가다가 죽더라도 일단 옮기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구급차에 동승한 의사는 아마도 수련 시작한 지 몇 달 안 된 인턴이었을 텐데 얼마나 혼비백산했을까.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계속 후송하라고 하고 내가 순간이동을 해서 그 앰뷸런스 안으로 가고 싶었다.
천신만고 끝에 아빠는 무사히 전원 받을 병원에 도착했고 언니로부터 머리 CT 찍은 것은 별 이상 없고 심혈관조영술실로 올라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살겠구나 라는 확신과 함께 면도칼처럼 날 서 있던 멘탈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는 깨어났고, 기적처럼 별 후유증 없이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병원 바깥에서 심정지가 일어났을 때 환자가 생존할 확률은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10%에 많이 못 미친다. 10명 중에 1명도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물며 신경학적 손상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확률은 더더욱 낮다. 그 엄청난 확률의 게임을 뚫고 아빠는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아니, 돌려보내 주셨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아빠를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사랑하고 있나. 문자 그대로 부활의 그 감격은 잊혀진 지 오래, " 지금은 아빠 때랑은 세상이 바뀌었어요" 하면서 그 판단과 지혜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엄청난 충격을 묵묵히 감내하며 상황 판단과 결정을 내렸던 우리 엄마를 나는 충분히 존경하고 있을까.
별 인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아는 지금, 어버이날을 맞아 내 인생이 쿵 하고 흔들렸던, 생애 최악의 하루를 돌아보면서 다시금 내 옆에 계시는 부모님의 존재에 감사한다. 아빠 엄마,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