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저 아기 생겼어요.

축하할 일인데 왜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가.

by 태어나길 반골

‘선배, 저 아기 생겼어요.’

후배가 톡을 보냈다. 이거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내 손가락은 축하한다는 답은 바로 누르지 못했을까. 멍하니 바라보다 서둘러 눌러댔다.

‘ 어이쿠! 축하할 일이다! 정말 축하한다, A야.’

후배인 A는 지난해 둘째를 가졌다가 잃었었다. 이것만으로도 위로받아 마땅한 일인데, 아기를 잃기 전까지 내가 험한 말을 달고 살았었다. 후배가 일처리를 못했다던가, 얌체짓을 했다던가 그런 시답잖은 이유가 아니다.


내가 속한 직장은 남초다. 그것도 심각한 남초. 내가 이십 년 전에 아이를 낳았고, 그다음이 이 후배의 첫 아이였다면 말 다했지. 여자가 없냐고...? 그럴 리가. 후배보다 나이 많은 여자 직원이 있지만 그이는 독신이니 논외가 아니겠는가. 후배 밑으로는 여자 직원이 서넛 있지만 추세에 맞게 결혼은 다들 아직인 관계로 직장 내 여직원의 아이는 현재 시점에서 달랑 둘.

여자도 적은데 배려하는 게 뭐가 문제냐 싶지만, 이 남초 세상에서 여직원의 임신은 나머지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나름 근무의 전환배치를 공평하게 하신다는 상급자의 계획에 생기는 변수라는 뜻이기도 하다. 임신으로 근무 시간의 단축이 필요하고, 휴일 근무 또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1960년 대에 태어나 아이는 여자가 집에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상급자들의 마인드와 만나면 발생 할 일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이십 년 전 내가 아이를 가졌을 적에도 축하한다는 말보다 휴일근무( 그때는 모자보건법이 지금과 같지 않았으므로)는 어찌할 것이냐는 질문을 더 받았으니 말 다했지.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었던지라 악착같이 일을 했었고, 다행히(?) 열흘 정도 빨리 나와준 아이 덕분에 출산예정일 전날에 잡힌 휴일 근무를 땡땡이 칠 수 있었다.


그 뒤로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자그마치 이십 년이 흘렀지 뭔가) 당연지사 인식이 바뀌었을 거라 여긴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A 후배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당연히 단축근무, 출산 전 휴직, 육아 휴직의 훌륭한 제도가 있었으므로 피로에 찌들어 태교고 나발이고 잠만 자대던 나랑은 틀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후배는 단축근무를 하기 위해 인사팀에 찾아가서 따지겠다는 각오까지 했어야 했었고, 실제로 그런 말을 하자 상급자들의 회의에서 그렇게 해주라는 결정이 나왔었다. (지금 몇 년도에 살고 있냐 묻지 마시길.)


임신 초반에 그런 일을 겪고 난 내 씩씩한 후배는 당연하게 육아휴직까지 찾아먹고 복직했다. 그 후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있다로 끝나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겠냐만. A 후배는 복직 후의 업무 전환 때에 야간 업무로 전환되었고, ( 물론 공평한 작업전환배치를 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 야간 업무 중에 둘째 소식을 전했었다. 둘째 소식에 야간 업무 기간을 못 채우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복귀할 때도, 배려를 이 정도 해줬으니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 다시 야간 업무로 복직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상급자의 덕담은 보너스였달까. 그리고 둘째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원래 태어나기를 반골이다. 불평불만 가득하고 얼굴엔 못마땅한 기운이 서려있으며, 아름다운 어휘로 내 입 또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뻐라 하는 후배의 힘든 과정을 옆에서 보며( 상급자와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서로 싫어하는 사이여서 잘릴까 봐 가서 따지진 못했다.) 너는 태교에 힘써라 욕은 내가 해주마 라며 세상에 있는 욕 없는 욕 다 갖다 붙여가며 지랄을 대신해주는 것 밖엔 도움되는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직장생활 왜 이렇게 해서 후배 도움도 못되나 하는 자책은 덤이었다.


내년에는 후배를 꼭 야간 업무로 복귀시키겠다는 상급자의 호언까지 있던 이 와중에 아기 소식을 접하고서는 가슴이 어찌나 덜컥 내려앉던지... 유산까지 겪었던 후배이니 상급자들도 이번엔 좀 다르겠지 하며 내심 기대도 조금 했었다. 그러나 개버릇은 남 못준다. 이번에도 역시 아니나다를까. 벌써부터 배려 운운하고 계신 상급자님의 소식이 들린다. 아아... 진정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죽을 때나 돼서야 변하는 게 인간이 맞는구나. 그러니 별 수 있나, 나 또한 아름다운 어휘를 달고 살아야 하는 수밖에.


한 가지 기술도 늘었다. 저주라는 기술이.
‘네 딸내미도 결혼하고 임신해서 똑같은 일 꼭 당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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