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재수생 시절이던 14년 여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사 읽은 책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수능 공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미해져 가는 외교관에 대한 꿈을 애써 붙잡으려 관련 서적들을 찾아가며 발버둥 친 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수험생활 속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이며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책도 그러한 고민 속에 내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많고 많은 국제정치학 도서 가운데 특별히 <왈츠 이후>를 택하게 된 동기는 이 책만의 구체성과 신선한 서술방식에 기인한다. 기존 국제정치학 도서들을 보면 얼마나 도식적이고 딱딱한가! 현실 문제에 응용하는 길을 알려주기보다 추상적 관념에만 머물러 있는 이론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는 이론들, 과연 그런 책들을 보며 어떤 국제정치학도 내지는 아직 나와 같이 진로를 탐색 중인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희망을 품을까. 그런가 하면 너무 통계나 지표에 의존하다 보니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책도 있다. 이론을 소개하는 것과 사례를 변증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여러 가지 그래프나 통계자료 또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다. 단 일련의 지표들은 어디까지나 서술에 대한 보조제 역할이 돼야지 주요 서술이 되면 곤란하다. 독자가 책에서 말하는 주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표가 없다면 독자가 직접 인터넷이나 신문 등의 매체로 관련 지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오히려 책에서의 주제를 독자가 강하게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왈츠 이후>는 앞서 설명한 기존 서적들의 문제점을 극복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도식성과 딱딱함, 관념 의존성은 1차, 2차 세계대전 또는 현재 남북관계 등의 사례를 들어가며 구체성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통계나 지표에 과잉 의존하는 경향 또한 저자만의 특징적인 서술로 극복했는데, 바로 각 챕터의 초점을 학자들에게 맞춰 각 학자들의 이론을 케네스 왈츠에 대한 변증 및 반증으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이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거의 모든 해당 분야 서적들이 '이론' 중심적으로 각 장을 배치했을 뿐 '사람' 중심적으로 배치하지 않은 까닭이다. 우선 첫 번째 단원 첫 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학자 왈츠를 소개하고, 그의 이론을 설명한 다음, 뒤이은 단원과 챕터에서는 그 이론을 보완하여 변증 하거나 반증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차례로 서술한다. 이런 방식은 짜임새라는 측면에서 보나 가독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나 높은 완결성을 띤다.
케네스 왈츠 (Kenneth Neal Waltz, 1924~2013) 출처: The National Interest
책에 따르면 왈츠는 기본적으로 국제정치를 무정부적 상태로 상정한다. 즉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위에 지어진 현실주의적 관점을 취한 것이다.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상태에서 왈츠는 국가 간의 안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들이 서로 동맹을 체결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가들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중재자가 없으므로 국가 간 동맹은 언제든지 파기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 왈츠에 따르면 국제사회는 다극체제보다 양극체제가 안보 위험이 적다. 다극체제에서는 동맹으로 말미암은 불필요한 전쟁이 많이 일어나며, 국가가 수집하는 정보의 비용도 많이 들뿐더러,미국과 구 소련 같은 두 국가 사이에 힘이 집중된 양극체제보다 힘이 여러 국가에 분산되어 안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왈츠의 기본적인 이론에 대해 저자는 그의 이론을 보완하는 반 에베라, 미어셰이머 등의 학자를 소개하기도 하고, 국내 정치가 국제정치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준다는 러셋, 스나이더 등의 이론, 국제협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오이(Oye), 국가의 개별 문화와 정체성이 국제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는 구성주의자 웬트와 존스턴, 그 밖에 월터와 파웰의 왈츠 이론에 대한 응용사례를 소개하면서 왈츠가 현대 국제정치학에 끼쳤던 영향력을 부각한다.
앞에서 썼던 <스무살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구매한 지 2년도 더 되어서야 완독하게 됐다. 그간에 외교관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도 국제정치학 도서에는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깨달음 하나를 준 것 같다: 꼭 외교관을 꿈꾸지 않더라도 흥미 차원에서, 상식 차원에서도 국제정치학을 접할 수 있겠다.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라면 몇 군데 동일한 표현과 유사한 문장을 번복해서 쓴 점이다. 앞 장에 대한 혹은 부족한 지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부분을 줄이면 차라리 독자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다시 읽고 모르는 부분은 스스로 찾아가며 능동적인 독서를 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