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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은자 Sep 05. 2020

시어머니에게 가족이란  [03화]

어머니는 가족이 보고 싶어 못 죽을것 같다고 하신다.




시어머니의 외숙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위로 언니가 있었지만, 정이 많고 적극적인 성격인 어머니는 동생들을 챙기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외숙이 잘 되면(여기서 잘 된다는 것은 남들이 인정할 만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다) 당신의 자식들 특히 큰아들도 덩달아서 잘 될 걸로 믿고 살아오신 거였다. 가족이 살기에도 버거운 생활인데 외숙과 같이 살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많은 것을 배려하고 심지어 식구가 많아서 방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외숙에게는 방을 마련해 주셨다고 한다. 한 번은 결혼 전 주말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저녁을 잔칫상처럼 장만을 하셨다. 식사시간이 지났으나 외숙 부부가 오시지 않아 식사를 못하고 있었다. 외숙은 주말부부인데 매번 주말 저녁을 어머니 집에서 하고 가신다고 한다. 두 분은 테니스를 하고 늦게 오셨다. 그날 의아한 것은 시아버님이 손위 분인데도 외숙이 상 한가운데 앉아 대접을 받았고 모든 것을 주도하셨다. 외숙에 대한 어머니의 지지가 절대적 이어서 가족들이 그대로 따라 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중요한 일로 고민할 때 외숙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 


일요일 아침 벨소리


임신이 안 되어 직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가 다시 광주로 오면서 어머니 집 가까운 곳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일요일 아침 자고 있다가 벨소리에 놀라 나가 보면 운동을 일찍 하시고 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부랴부랴 생선을 굽고 아침 준비를 하면 기다렸다 드시고 가신다. 어머니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큰 도로 하나를 건너면 되는 거리다. 어머니는 큰아들이 보고 싶어서 다른 것은 생각을 못 하신다. 나중에 같이 살면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죽을 때가 되어도 자식이 보고 싶어서 못 죽을 것 같다고 하신다. 세상에 어떤 어머니보다도 자식을 많이 그리워하신다.


남편의 직장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5년 일찍 직장생활을 한 나보다 남편의 연봉은 훨씬 많았다. 금융위기로 남편회사인 투자신탁회사가 사라져 버렸다.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네트워크 사업을 하게 된 상황이어서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편은 생활비를 벌려고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하는 일을 도우려고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남편이 주식투자로 많은 돈을 잃게 되고 해결방법이 없어서 죽을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하는 얘기가 아이들이 눈에 밟혀야 하는데 , 아무런 의심 없이 남편을 믿고 등기부등본을 건네주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부모님 도움 없이 저축으로 마련한 32평 아파트를 주식투자로 날려버렸다.


나의 경제적 실패


돈이 없어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없는 현실이 나에게 닥친 거다. 내가 부도가 났다. 아버지가 부도났을 때는 아버지의 부도였다. 너무 막막해서 울고 집을 팔아야 하는 사실에 울었다. 시어머니는 돈이 얼마나 있으면 해결되겠냐고 물어보셨다. 금액이 너무 많아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시댁 2층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 인생의 전부인 아들이 부도나서 아이 둘을 데리고 남의 집에 사는 것을 볼 수가 없다는 거다. 아파트는 광고 나가기가 무섭게 계약을 하자고 했고 아파트가 팔린 날 이른 아침 시이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한테 투자한 돈 2천만 원을 돌려 달라고 하시며 절대로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하셨다. 만약에 어머니가 아시면 조카가 힘든데, 다른 사람한테 투자했으면 받지도 못 할 돈을 몰래 받았다고 이모를 원망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3년 동안 지켜드렸는데, 나중에 시이모님이 우리하고 돈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어머니에게 하셨단다. 그때 3년 동안 비밀로 한 얘기를 말씀드렸다.


시어머니에게 가족이란


어머니는 시이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긴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도와줬던 이야기를 하셨다. 동생들이 어려울 때 마음을 다해 도와줬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고, 어머니가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잘 살아야 하는데 생각만큼 잘 살지 못한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가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된 후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외숙을 믿고 살아왔는데 기대만큼 큰아들을 챙기지 않는 서운함에 우시면서 이야기하신다. 어머니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들어주고 단지 말뿐 이어도 희망을 갖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였다. 신혼 때도 잠을 자다 깨 보면 남편이 없어서 나중에 물어보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 하루 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빠짐없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모르는 어머니 비밀은 없다. 어머니에게 가족이란 가족 중에 누군가가 힘들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데 까지 돕고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신다. 개인의 사생활은 생각하지 않으신다. 남편 말이 어머니는 ‘氣’(기)로 사시는 분인데 기가 죽어 버리면 사는 것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삶이 열정적 이어서 누구보다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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