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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하린 Aug 15. 2020

빛과 어둠

요즘 많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인데,
사실 나는 행복해지기 두려울 때가 있어.
정확히는 ‘행복해져도 될까’ 하는 생각.

나는 어둠 속에 있을 때 너무 밝은 빛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든. 깜깜한 곳에서 갑자기 밝은 손전등을 눈앞에 들이대면 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어릴 적 내게 세상은 화려한 빛의 공간이었어. 주변 친구들은 잘 다려진 옷을 입었고 유행에 따른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갖고 있었지. 저마다의 하루 일과를 공유하면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까르르 웃었고 서로의 집에 서로를 초대했어. 그것들은 행복해 보였고 모자람이 없어 보였어. 하지만 그 빛은 너무 환해서 난 그곳에 편히 있을 수 없었어.

나에게 집은 어둠의 공간이었어. 곳곳에 물건이 쌓여 비좁은 그 공간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지. 세상은 깨끗했고 나는 그렇지 못했거든. 당시의 나는 샤워하는 게 너무 싫어서 내가 지저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추운 거더라. 나는 그 사실을 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더러운 집은 내 무기력을 드러냈고 쌓여버린 짐들은 불필요한 애착이었어. 사실 난 그 공간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했는지도 몰라. 적어도 그 안에 있으면 내가 더럽다거나 모자라다는 걸 깨닫지 못했거든. 그저 그것들과 하나가 되어서 나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때의 내가 바랐던 건 누군가에겐 소소한 것들이었어.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리된 공간, 방과 후 배고플 때 군것질을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 하지만 그런 평범해 보이는 행복들을 누리기엔 우리 집이 평범함의 범주에 들지 못할 만큼 힘든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지.

왜 나는 지금의 내게 주어진 행복을 그저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 지금의 행복을 보상처럼 여기기엔, 그때의 힘듦을 정당화하는 거 같아서 싫어. 그 시기는 사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을 거 같거든. 무엇보다 저 말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기엔, 세상엔 낙이 오지 않은 채 고생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혹은 즐거움에 익숙해져서 감사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 같아. 지금 내게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좋아하는 활동들을 찾아서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고, 좋은 공간에 가서 밥과 카페를 즐길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가 생겼다는 것- 이것들은 소소한 행복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내게 주어진 행복을 행복하게 여기지 못하겠더라고.

근데 나는 많이 행복해지고 싶어. 내게 주어진 것들을 온전히 누리고 살면서 더 많은 행복을 마주하고 싶어. 이제는 맘 편하게 누리고 더 많은 걸 바라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나는 나와 같던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야. 이건 이타적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야. 나는 내가 한 꺼풀 벗겨진 사람이라서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서로 부족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그래야 난 그 안에서 존재 의미를 찾거든.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빛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또한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어둠이 되고 싶어.

어둠이 없는 빛은 폭력이지만
어둠과 공존할 때 비로소 빛은 그 의미를 지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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