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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하린 Dec 16. 2020

상처

있잖아

절벽에 내몰린 나를 끌어올려준 사람이 알고 보니 줄곧

절벽 끝에 있었다면 어떨 거 같아

어제는 언니의 공허함을 마주했어


더 이상 그 어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거 같고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아.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게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편안해.
드디어 뭔가를 내려놓은 거 같아


공허함은 말이야
상처가 있는 자리에 또 맞으면
상처가 아물지도 않고 터져
아프다 , 너무 아프다 , 아파
그렇게 살이 뭉그러지고 진물이 나고

흉측해

많이 흉측해
상처 받은 건 난데 내가 썩어가

이젠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했는데
다시 굳세게 나를 내리쳤고

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아파아아아아아아

그땐 이제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음 하는 거야
나를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말할 그 어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그냥 내가 없는 거야
그렇게 믿는 거야

그렇게 무감각해지는 거야
감정에 삶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나 자신마저도

상처 난 자리에 피가 다 빠져나가고
부옇고 창백한 살갗만이 남아있는
언니는 그런 상태인 거야


줄곧 외면해왔던 사실을 마주한 거 같아

나 어릴 때

할머니가 파지 주워서 리어카에 싣고
이거 저기 슈퍼에 가지고 가서 받는 거 너 용돈 해
그렇게 사백오십 원 천오백 원 모아서 통장에 십만 원이

됐을 때 참 뿌듯해서 옆자리 짝꿍한테 자랑한 적 있거든

자긴 통장에 팔십만 원 있다고
그거 다 용돈 세뱃돈 모은 거니까 자기가 번 거래
그니까 나 별로 대단한 거 아니래

이젠 누군가에게 더 많은 가치로 환산될 시간을

8590원에 팔아가면서

내가 저렴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응 아닐 거야 하고 넘겼는데

실은 그런 생각들이 우스운 거면 어쩌지

그리고 언닌 더 커진 내가 되어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거면

그냥 내가
아니 우리가
행복했던 그 모든 순간들도 저렴한 거면
그땐 진짜 어쩌지

누군가는 고통이 나중의 행복을

꾸며주는 장식이 될 거라 말을 해
그럼 나중의 행복이 없으면
이 고통은 의미가 없는 걸까


고생 끝에 낙이온다고 세상이 나를 기만할 때
그저 낙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 사이로 너덜해진 마음을 끌고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이 지나가

결국 나는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을 해
예쁘게 단어를 나열하고
가다듬고 정리하고

이러면 우리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어질까 


언니가 더는 투명해지지 않게
깨지기 쉬운 언니를 조심조심 다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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